서울 서대문구청에 근무하는 박경은(28) 주무관은 지난 2013년 대학 졸업 후 한 기업에 입사했다. 취업준비생들도 모두 부러워하는 번듯한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뒤 지난해 합격해 올해 초 임용됐다. ‘9급 공무원’이 된 후 그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돼 고용불안감이 없어졌고, 무엇보다 ‘저녁 있는 삶’을 누린다. 그는 “공무원의 길을 택한 것은 여성으로서 오래 다닐 수 있는 직장, 그리고 안정적인 삶을 원했기 때문”이라며 “9급 공무원이라고 하면 그냥 말단 공무원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름대로 많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하는 취업난 속에서 공무원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고 그 가운데 특히 9급 공무원 쏠림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취업정보 사이트 조사에 따르면 취준생 10명 중 4명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이 가운데 57%는 ‘9급’이 목표다.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가 관계자는 “한해 공시생이 5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 중 25만명 이상은 9급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9·7·5급 국가공무원의 1호봉 기본급 월 수령액은 각각 159만2,400원, 182만1,900원, 240만3,500원이다. 승진기간도 짧지 않다. 9급이 7·5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각각 평균 11.4년, 24.4년이나 걸린다. 급여에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승진기간도 길지만 공시생들은 9급을 선호한다. 9급 시험은 5·7급에 비해 과목 수가 적은데다 선발인원이 많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말단직원이라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우선하는 젊은 세대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고시학원가에서는 9급 시험을 준비 중인 명문대 출신 공시생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9급 공무원 열풍에는 고등학생들도 가세하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서 18~19세 합격자는 2014년 이전에는 1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0명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5년간 9급 국가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60대1을 훌쩍 넘고 9급 지방공무원 역시 서울시는 90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9급 공무원이 됐다 해도 무조건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은 아니다. 높지 않은 급여, 민원인의 갑질 등 여러 일로 힘들어하는 9급 공무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젊은 인력이 9급 공무원 시험에 대거 몰리는 쏠림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으로 공무원 관련 법안 발의와 연구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젊은 인재들이 기초과학 등 여러 분야에 골고루 진출해야 하는데 공무원시험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라며 “인재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사회구조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