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미·러 신냉전시대 도래할까…INF 조약 폐기로 양자 대립 구도 고착화

미국과 러시아가 핵개발 경쟁을 막기 위해 30년간 유지해온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전 세계가 본격적인 군비경쟁 재점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물론 동중국해에서 대립해왔던 미국과 러시아가 INF 조약 폐기를 계기로 양자 대립 구도가 고착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러가 군사적 자웅을 겨루는 신냉전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예정대로 자국 동부시간 기준 2일 0시(한국시간 2일 오후 1시)를 기해 INF에서 공식 탈퇴했다. 역사상 가장 모범적 군축조약의 하나로 평가받은 문서가 휴짓조각으로 변해 버리게 된 것이다.

INF 조약은 미국이 냉전시대인 1987년 구 소련과 지상에서 발사하는 중·단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을 제한키로 한 합의로, 1991년까지 2,692기를 폐기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냉전 해체로 가는 역사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 의회전문 매체 더힐은 칼라 글리슨 미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의무사항 검증을 준수하려는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종료되는 8월2일 이후 미국은 더 이상 INF 금지조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탈퇴를 기정사실화했다고 전한 바 있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INF 조약 효력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법률 정보 공시 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8월 2일 자로 지난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옛 소련과 미국 간에 서명됐던 INF 조약의 효력이 미국 측의 주창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일찌감치 미국에 맞탈퇴로 대응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앞서 지난달 30일 INF 조약 종료를 번복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면서, 미국이 조약 탈퇴 이후 러시아를 겨냥해 유럽 내 핵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러시아도 미국을 목표로 핵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다고 위협 수위를 높였다.

당장 미국과 러시아의 지상발사 핵전력을 규율해온 토대가 무너짐에 따라 양국 간 군비경쟁을 물론 핵전쟁 억지력으로 활용해온 유럽 국가들의 불안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는 지난 1987년 12월 미국과 옛소련이 중·단거리 핵미사일 폐기를 위해 INF 조약을 체결한 후 30여년간 이어져 온 안보 균형상태가 다시 위기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INF 조약 폐기를 목격하고 있다”면서 “이 조약을 살릴 수 있도록 러시아가 이를 준수해달라”고 촉구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의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은 “후속조치 없는 탈퇴는 새로운 군비경쟁으로 초대하는 것”이라며 “러시아는 분명히 무기체계 확장에 돈을 쓸 것이고 미국 역시 군비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마찰은 최근 들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앞에 두고 보란 듯이 이란과 해군 합동 훈련을 하기로 했다.


호세인 한자니 이란 해군사령관은 이날 이란 국영 IRNA통신에 “이란과 러시아가 올해 안으로 페르시아만(걸프 해역) 등에서 해군 합동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라고 지난달 29일 말했다.

관련기사



양국의 해군 합동훈련은 걸프 해역으로 집중되는 미국과 유럽의 군사적 움직임과 맞물려 친이란·반미 진영의 군사적 ‘위력 시위’로도 해석될 수 있다. 미국은 최근 3개월간 걸프 해역과 오만해에서 유조선 피격, 미군 무인 정찰기 격추, 유조선 억류 등 대형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의 운항을 공동으로 보호하자는 ‘센티널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우방에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외에도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와 군사적 교류를 강화하며 미국을 자극 시키고 있고, 6월에는 동중국해에서 미국과 러시아 군함이 충돌 위기까지 가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러시아 폭격기가 한국의 영공을 넘나들며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를 시험하기도 했다.

이밖에 터키와 중국이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미국과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미국은 유럽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EPA연합뉴스/EPA연합뉴스


앞으로 양국의 대립이 고착화 되고 있는 가운데 INF라는 안전장치가 풀리면서 미·러 양국의 미사일 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군사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당장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을 겨냥한 새로운 중·단거리 미사일을 개발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곧바로 맞대응에 나서면서 심각한 핵 위기가 고조되고 최악의 미·러 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군비통제협회 대릴 킴볼 사무국장은 2일 타스 통신에 미 국방부가 이미 이달 말에 INF에서 금지했던 종류의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 비행 시험을 실시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는 오는 11월에는 INF 조약으로 1991년 폐기됐던 ‘퍼싱-2’와 유사한 준중거리 지상발사 탄도미사일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러시아도 즉각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도 지난달 31일 INF에서 금지한 지상 발사 핵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될 경우 맞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에 더 가까운 곳에 유사한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사거리 500km 이상 지상 발사 미사일 개발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해상 발사 순항미사일 ‘칼리브르’(최대 사거리 2,000km)의 지상 발사 버전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노현섭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