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잠무카슈미르에서 테러와 분리주의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전적으로 확신한다.”
지난 8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단호하고 강경한 어조로 이같이 말했다. 그가 이런 대국민 TV 연설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위성 격추 미사일 시험 성공 발표 이후 처음이다. 국내외에서 큰 이슈가 발생했을 때만 직접 TV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모디 총리가 약 5개월 만에 대국민 연설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해당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5일 인도 정부는 파키스탄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인도령 잠무카슈미르주에 허용된 자치권 등 헌법상 특별지위를 박탈해 국내외 큰 논란과 우려를 낳았다. 인도 헌법 370조에 따르면 잠무카슈미르 주는 국방·외교·재무·통신을 제외한 영역에서 자치권을 누린다. 인도 의회는 이 지역에 법을 적용하려면 주 정부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인도 중앙정부는 영토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함부로 이곳에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인도 정부가 이 같은 헌법상 특별 지위를 폐지하며 인도 중앙정부가 이 지역을 직접 통치하게 됐다. 카슈미르에서는 전화, 인터넷 서비스, 케이블 네트워크가 끊겼고 거리엔 통행권을 소지한 주민만 다닐 수 있게 됐다. 사실상 계엄령에 가까운 주민 통제령을 내린 것이다. 인도 당국은 지난 4일 저녁부터 3만5,000여명의 인도군을 추가 파견해 통제를 강화했다. 8일까지 최소 300명의 정치인과 분리주의자들이 구금됐고 외부자 여행도 금지됐다. 이번 조치에 따라 카슈미르 지역 원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누려온 부동산 취득, 취업 관련 특혜도 잃었다.
모디 총리는 “카슈미르에 특별지위가 부여된 결과는 테러, 분리주의, 족벌주의, 거대한 부패”라며 테러 대응을 명분으로 이번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외신들의 시각은 달랐다. 이들은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집권 인도국민당(BJP)과 모디 총리가 카슈미르 통합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주민의 60% 가량이 무슬림인 카슈미르 지역을 ‘힌두화’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CNN은 “헌법 370조를 폐지하면 다양한 인구통계학적 배경의 사람들이 카슈미르로 이주하게 될 것”이라며 이곳이 ‘힌두 지역’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 신자인 인도에서 카슈미르 지역은 유일하게 무슬림이 다수인 곳으로, 인도가 1947년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한 힌두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모디 총리에게 이슬람교 인구가 힌두교를 넘어선 지역이 있다는 사실은 인도를 완전한 힌두 국가로 만드는 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분석했다. 이에 실제로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는 카슈미르 특별 지위를 없애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왔으며 인도 국민들의 탄탄한 지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5월 ‘집권 2기’를 시작한 모디 총리에게 힌두민족주의는 큰 버팀목으로, 모디 총리는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조치들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의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모디 총리의 이번 조치는 힌두민족주의의 오랜 요구를 이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모디 총리가 경기 둔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카슈미르 지역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들의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에 대한 불만을 카슈미르로 돌려버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모디 정권은 현재 2조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규모를 2025년까지 5조 달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선 주춤해진 성장 속도를 다시 가파르게 끌어올려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도의 올해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8%에 그쳐 20분기 만에 최악을 기록했으며 2017∼2018년 실업률은 6.1%로 45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파키스탄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인도가 이 지역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들을 탄압하려는 조치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임란 칸 총리는 지난 6일 “인도가 카슈미르에서 인종 청소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지난 7일 인도와 외교 관계를 격하하고 양자 무역을 중단했다. 이어 8일에는 인도 민항기가 이용하는 파키스탄 영공 항공 노선 일부를 폐쇄했고 파키스탄과 인도를 오가는 유일한 열차 운행도 중단했다. 칸 총리는 트위터에 “카슈미르인 종족학살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인도를 제지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양국 간 긴장이 다시금 높아지자, 인도의 조치에 반발해 이슬람 무장 조직이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힌두스탄타임스는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자이시-에-무함마드’가 인도 대도시의 인프라 시설 등을 겨냥한 공격을 계획 중인 것으로 의심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