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 제목 ‘밤이 선생이다’는 프랑스의 속담 “La nuit porte conseil”를 자유번역한 말이다. 직역하면 “밤이 좋은 생각을 가져오지”라는 말로 어떤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한 밤 자고 나면 해결책이 떠오를 것’이라는 위로의 인사다. 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서문에 약간의 암시가 있고, 밤의 예찬에 해당하는 글이 한 편 들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강연에서는 자주 이 이야기를 했다. 밤은 내게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을 만들어준 선생이다. (황현산,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2019년 난다 펴냄)
세상엔 ‘선생’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나 기꺼이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이는 그보다 훨씬 적다. 지난해 별세한 불문학자이자 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선생’이라는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 그는 70대에 처음 트위터 계정을 열고, 젊은이들과 대화했다. 평등하게 말을 섞되, 인터넷상에 고여 있는 말의 진탕에 빠지지 않았다. ‘한국어의 제1급 사용자’인 그가 전하는 140자는 단정하고 다정했다. 어른이자 선생으로 불리는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인 ‘꼰대질’을 하지 않았고, “늙어가며 제 나이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젊은 세대를 욕하게” 된다 말했다.
사람들이 진짜 선생이라 여긴 황 선생의 스승은 ‘밤’이었다. 모든 소음과 잡사가 물러난 시간, 와글거리고 번잡스러운 것들을 밀어내고 고독하게 생각을 불러모으고 글 쓰는 시간. 그리하여 점점 고요하고 아늑한 밤을 닮아간 선생은 ‘내가 안다, 내 말이 맞다’고 말하지 않았다. 붉은 얼굴로 열 올리며 훈계하고 후배들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세상엔 오만과 편견을 선생으로 여기고 한낮에 낯부끄러운 짓들을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밤이 내릴 때까지, 선생이 보일 때까지 우리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