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대한 양의 이용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통신 업계. 특히 통신 업계에서는 각 이용자들의 스마트폰 이용 행태부터 데이터 사용량까지 다양한 내용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에 막혀 신산업 발전에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통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쪽에서는 인공지능(AI)이나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체가 보유한 데이터를 더 깊게 분석해보고 싶어하지만 현재로서는 못하는 부분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21세기 원유’로 불리는 빅데이터 시대가 열렸지만 국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데이터 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실제 추진을 위한 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9개월째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개인별 맞춤형 상품 개발은 물론 다른 산업과의 융합까지 다양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1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내용의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은 지난해 11월 발의된 후 현재까지 계류돼 있다. 여야 간 빅데이터 산업 발전에 대해 공감하고 있어 이견이 크지 않은데도 정쟁 등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업계에서는 데이터3법의 글자를 따 ‘개망신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데이터3법은 비식별화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법이 통과되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는 가명 개인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서비스 개발 등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가명 정보는 이름이나 연락처 등을 암호화해 추가 정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특정 개인을 알 수 없도록 한 정보다. 여러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이종결합해 더 나은 빅데이터를 산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데이터 활용을 가장 기다리는 업계 중 하나는 금융 분야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의 배경과 관련해 “소비·투자 행태, 위험 성향 등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금융상품 개발이나 정보통신·위치정보·보건의료 등 다른 산업 분야와의 융합까지 가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서도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국제적인 추세에 부합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보호 규제가 강한 수준으로, 해외 주요국에 비해 금융 분야의 데이터 활용이 저조하다”고 필요성을 밝혔다.
핀테크 업계에서도 데이터3법의 처리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초년생 같은 신파일러(금융이력이 거의 없는 사람)의 경우 기존 금융정보 중심으로 평가하면 대출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다면 평가를 할 경우 더 나은 금융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마이데이터 역시 국내에서는 법 미비로 인해 반쪽짜리 서비스가 될 우려에 처한 상황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2차 지급결제산업지침(PSD2)에 따라 핀테크 업체가 오픈 뱅킹으로 고객계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서도 업계는 “법 개정이 1년씩 늦어질수록 데이터 선진국을 따라가는 데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조속한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가와 업체들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내 기업·기관들의 빅데이터 도입률은 10%(2018년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기관들이 빅데이터를 아직 도입하지 않는 이유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33.7%인 ‘관련 데이터 부재’다. 데이터를 이용하고 싶더라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는 의미다.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5G 시대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어느 때보다 잘 갖춰져 있다”며 “법 개정이 되면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서비스들이 나올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추진할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빅데이터 활용·분석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31위에 머물렀다. 3위를 차지한 미국이나 12위 중국 등과 비교했을 때 한참 뒤떨어진 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