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색인문학] 땅과 이름 가진 500살 거목 '인격'이 되다

나무로 읽는 역사- 천연기념물 400호 '황목근'

강판권 계명대 교수·사학과

나무에 특별한 의미·가치 부여

마을 공동재산 토지 등기하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 제사 올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고

우리나라 나무동화 상징적 존재

사람처럼 이름도 있고 땅도 가진 국내 유일의 팽나무 천연기념물 400호 황목근이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사람처럼 이름도 있고 땅도 가진 국내 유일의 팽나무 천연기념물 400호 황목근이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의 ‘황목근’은 지구상에 있는 나무 중에서 아주 보기 드문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팽나무다. 왜냐하면 황목근은 땅을 가졌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다. 그런데 예천의 황목근은 우리나라 팽나무 중에서도 유일하게 땅을 소유한 나무일 뿐 아니라 사람처럼 이름까지 갖고 있다. 나는 아직 예천의 팽나무처럼 땅과 이름을 함께 가진 팽나무를 만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따라서 황목근은 금남리 주민들의 팽나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황목근 같은 경우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세계 나무문화사에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더욱이 예천군에는 황목근처럼 땅을 소유한 소나무인 석송령도 살고 있다.

금남리 팽나무가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나무가 농업사회에서 아주 귀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부모인 느릅나무를 닮아 목질이 단단하고 물에도 잘 썩지 않아 배를 건조하거나 농기구를 만드는 데 아주 소중한 나무였다. 더욱이 팽나무는 소나뭇과의 곰솔처럼 소금기에도 아주 강해 바닷바람을 막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바닷가 주변 농토 주변에서 팽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팽나무가 소금기에 강하기 때문이다. 용궁면 금남리의 팽나무는 금원평야 논 가운데 살고 있다.

금남리 사람들은 팽나무의 삶을 통해 농사의 길흉을 판단했다. 그들은 팽나무의 누른 꽃이 한꺼번에 피면 풍년이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금남리 사람들의 이곳 팽나무에 대한 사랑은 이 나무에 사람처럼 이름을 붙이고 땅을 등기한 데서 알 수 있다. 팽나무가 땅을 소유한 증거는 1903년 ‘금안계안회의록’과 1925년 ‘저축구조계임원록’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팽나무에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1939년 마을에서 공동재산인 토지를 이 나무 앞으로 등기이전하면서부터였다. 토지를 나무 소유로 등기이전하려면 사람과 같은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팽나무를 황목근으로 삼은 것은 꽃이 누른 색으로 피고, 팽나무가 나무의 근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낙뢰로부터 황목근을 보호하기 위해 서 있는 피뢰침.낙뢰로부터 황목근을 보호하기 위해 서 있는 피뢰침.


1998년 12월23일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된 황목근은 높이가 10m, 가슴둘레가 5.7m다. 논 가운데 우뚝 서 있어 더욱 돋보인다. 500세의 팽나무 근처에는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 제관과 축관을 선정해 당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 제사를 지낸 다음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화합을 다진다. 특히 팽나무 근처에는 제사에 사용할 우물까지 만들었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현재 팽나무는 500년을 사는 동안 몸이 아주 많이 상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문화재청에서는 만약에 대비해 황목근 옆에 후계목을 키우고 있다. 아울러 황목근을 낙뢰에서 보호하기 위해 피뢰침까지 설치했다.


팽나무 황목근의 탄생은 농업사회의 농민들이 나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다. 금남리 사람처럼 나무를 숭배하는 사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신화에 나무가 흔히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부분의 나무도 농업사회의 나무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황목근의 탄생은 단순히 농업사회의 산물을 넘어 세계 수목문화사는 물론 수목생태사 차원에서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 황목근은 단순히 200그루가 넘는 우리나라의 나무 천연기념물 중 한 그루가 아니라 세계의 천연기념물 나무 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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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목근은 지금까지 인간이 나무에 부여한 최고의 대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나무에 대한 인간의 대우를 보여주는 사례는 사군자처럼 나무를 사람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인격화였다. 그런데 황목근은 사군자와 정이품송 같은 인격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인류가 나무에 부여한 인격화는 단순한 명칭에 지나지 않은 반면 황목근은 명칭뿐 아니라 사람과 똑같이 대우했다. 황목근은 인간이 나무를 명실상부하게 인격적으로 대우한 경우다. 황목근처럼 나무 한 그루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사례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내가 황목근에 큰 관심을 갖는 것도 황목근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나무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처럼 아직 황목근의 가치를 세계사적으로 이해한 경우는 없다. 특히 내가 황목근의 가치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황목근이 자연생태·사회생태·인문생태 등 생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존재이기 때문이다. 황목근의 이 같은 가치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자랑에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내가 황목근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의 나무 신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도 외국의 나무 신화 못지않은 것이 아주 많지만 알려진 나무 종류는 아주 드물다. 나는 그동안 나무를 인문학적으로 연구하면서 나무 동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나무 동화가 중요한 것은 어린 시절의 나무에 대한 인식이 평생 나무에 대한 관심에 지대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행복한 삶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황목근은 나무 동화를 만드는 데 아주 중요한 존재이자 우리나라 나무 동화의 상징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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