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타오르는 산불에 기름 붓는 정부

박효정 산업부기자




“눈앞에서 산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정부는 ‘진화용 헬기를 개발할 수 있나 확인해보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연일 소재 산업 육성방안을 내놓고 있는 정부를 두고 최근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가 꼬집은 말이다. 최근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재정·세제·금융 지원을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진화용 헬기개발도 안이하다고 비판받는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산불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청와대가 지난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다. 당장 일본은 “한국이 선을 넘었다”며 칼을 갈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로봇·이차전지 등 국내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로 전방위 확대될까 노심초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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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웃고 있는 곳은 해외 경쟁 업체들이다. 당장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아이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납품을 위해 최종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며칠 전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극자외선(EUV) 공정 수율이 떨어져 퀄컴 칩 생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 측에서 곧장 “현재 EUV 공정 수율이 높을 뿐 아니라 그 증가 속도도 빠르다”고 반박했으나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의 EUV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규제와 연관 짓기도 했다.

정부는 소재 국산화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한다지만 당장 산이 불타버린다면 무슨 소용일까. 일본의 추가제재로 생산차질이 빚어질 경우 직격탄을 맞는 것은 지역경제다. 아직은 삼성·SK 등 대기업의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지만 만에 하나 공장이 멈춘다면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도 문제지만 크고 작은 하청업체들까지 연쇄 피해로 뒤집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국익을 증진하는 일이다. 그 정당성과는 별개로 일본은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된 자국기업을 위해 칼을 뽑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삼성과 경쟁하는 애플을 돕겠다”며 나섰다. 우리 정부는 무엇을 위해 외교를 하고 있나.

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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