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기준금리 동결한 한은…왜 인하를 주저할까?




한국은행이 8월 30일 기준금리를 1.50%에서 동결했습니다. 시장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채권 전문가들은 한은이 8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후 10월이나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인 11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예견해왔습니다. 한은이 지난 7월에 이어 8월 두 번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할 것이란 판단에서죠. 기준금리 동결 소식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올해 내내 경기가 침체를 겪고 있다는 경제 뉴스가 끊이질 않는데 왜 한은은 기준금리 인하를 이토록 힘겨워 하냐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경기가 어려우면 7월도 내리고 8월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겠죠?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2명도 이 같은 판단으로 지난 7월에 이어 8월 역시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승현기자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오승현기자


◇이주열 총재가 꺼낸 실효하한 개념=이주열 총재가 지난 7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실효하한’이란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내렸지만 여전히 한국의 기준금리는 실효하한에 근접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통해서죠. 금리 인하 여력이 아주 조금은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실효하한에 기준금리가 너무 근접해 있어 기준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이주열 총재를 비롯한 5명의 금통위원들이 동결에 손을 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때문에 실효하한이라는 개념 자체가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하는 ‘매파’에서 왜곡해서 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원래 실효하한이라는 개념 자체는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가 높았을 때 사용되던 개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즉 한국이 미국의 기준금리보다 적어도 이만큼 높아야 우리나라로 투자자금이 몰려들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라는 것이죠. 지금과 같이 미국이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쓰였던 용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각에서는 “실효하한은 경제학에도 없는 개념이다”라고까지 주장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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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을 옥죄는 금융안정 목표=30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했던 조동철 금통위원은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은 본연의 목표인 물가안정제의 신경을 쓰고 금융안정은 정부의 정책 수단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2011년 한은법 개정을 통해 한은의 책무로 명시됐던 금융안정 목표를 조금은 덜 신경 쓰고 물가와 경기 대응에 힘을 쓰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법이 개정됐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한은은 금융안정의 주요 변수인 가계대출과 부동산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번 금통위에서도 한은은 다시 가팔라지는 가계부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금통위는 30일 통화정책 방향에서 가계대출과 주택가격에 대해 “증가세 둔화가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이 총재는 “최근 업황이 부진한 음식·숙박업과 도·소매 같은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대출 연체 흐름이 상승하고 있어 이에 대해서는 유의하고 있다”며 “경기가 더 나빠진다면 자영업 업황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자영업대출의 건전성과 리스크를 지속해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비둘기파 성향의 전문가들은 “지금은 가계부채보다 경기 부양, 물가 안정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금융안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한은 제 1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한은의 정책 목표에 우선순위가 있다면 좋겠지만...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은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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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10월엔 인하=30일 금통위에서는 2명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냈습니다. 통상 다수의견에 궤를 같이하는 이 총재와 윤면식 부총재를 제외하고 보면 5명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 동결과 인하를 놓고 3대2로 팽팽히 맞선 것인데요. 기준금리 동결을 주장한 3명의 금통위원들도 대외여건이 악화됐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어 경기지표 악화가 10월까지 지속될 경우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준비는 돼 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2명의 소수의견이 등장하면서 10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추가 기준금리 인하 시점으로 10월이 거론되는 까닭은 한은이 9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보고 즉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예측에섭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9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자금유출 등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 여력에 대해 “앞으로의 경제상황에 따라 필요시 대응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력은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장률 목표치 하회 가능성…1.0% 금리 시대 오나?=기준금리의 향배는 7월 인하에서 8월 동결로 멈춰 섰지만 이 총재 등 한은이 내놓은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은 더욱 엄중했습니다. 한은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미중 무역분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며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7월 전망 경로에 비해 하방 위험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다. 대외여건이 악화돼 수출은 9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대 머물고 있어 내우외환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총재도 기자간담회에서 “성장률 달성을 어렵게 하는 대외 위험 커진다”며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연관성을 고려해보면 소위 갈등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은이 목표로 제시했던 2.2%의 경제성장률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한 채권 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가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언급한 것은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 조정할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풀이된다”며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홍콩 시위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비교적 견고했던 국내 소비 증가세도 약화된 것으로 판단하면서 2.2% 성장률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지면 올해 10월에 이어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를 한번 더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인 1.0%까지 떨어집니다.

내년에도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한국의 기준금리는 0%대로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요? 이 총재는 “실효하한 개념은 자본유출이 시작되는 지점인지, 아니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가 발현되는 지점인지 등에 대해 다양한 개념이 있을 수 있 ”며 기준금리의 마지노선에 대해서 정확한 수치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점은 기준금리가 0%대 까지 내려간다면 통화정책의 여력은 실효하한 같은 어려운 개념을 떠나 사실상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미중 무역분쟁에 더해 일본까지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를 하겠다며 날뛰는 이같은 상황이 어서 끝나고 기준금리도 더 이상 낮아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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