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절박함이 빚은 오리너구리 '오구', 날다

[디자인의 재발견-캐릭터 '오구']

오리너구리 특징 살린 동물 캐릭터 '오구'

15번 도전만에 인기 이모티콘 자리매김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더 어려워

문종범 작가 "전공 살린 도자기 도전하고파"

오리너구리 캐릭터 ‘오구’의 초기 스케치. 이모티콘으로 출시된 후 1020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오리너구리 캐릭터 ‘오구’의 초기 스케치. 이모티콘으로 출시된 후 1020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귀여워하는 대상을 어르거나 다독일 때 내는 소리, 오구오구. 하얀 몸뚱이를 좌우로 흔들며 하트를 날리고 짧은 팔을 들어 포즈를 취하는 캐릭터 ‘오구’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이런 소리가 나온다. 오구는 오리너구리라는 동물을 모티브로 작가 문종범 씨가 만든 캐릭터다. 문 작가는 “오리너구리의 작은 눈과 긴 주둥이는 살리되 형태를 단순화시켜 모바일 메신저 이모티콘에 적합한 지금의 오구를 완성시켰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오구는 제법 두터워진 팬층을 기반으로 문구, 장난감 등 연계 상품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문 작가는 도예과를 졸업했다. 그의 주변에 ‘이모티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를 생소한 이모티콘의 세계로 이끈 건 의외로 ‘절박함’이었다. 그는 “미대 학생은 졸업 후 작업활동을 할 거냐 취직을 할 거냐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며 “한창 고민하던 와중에 우연히 접한 기사가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작품활동은 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처럼 ‘신인작가로 먹고 사는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녹록지 않은 현실과 하고 싶은 일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에게 ‘이모티콘 작가들의 인터뷰’는 새로운 기회였다. 그는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모두가 그 이야기에서 시장성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의 간절함은 ‘일단 부딪쳐보자’는 도전정신으로 발현됐다. 지난 2017년 졸업전시를 준비하며 만든 조명 디자인을 다듬어 그 해 7월 첫 이모티콘으로 냈다. 곧장 승인이 났다. 하지만 직업으로 삼을만한가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두 번째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이 역시 어렵지 않게 출시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모티콘 제작에 전념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기간을 정했다. 1년. 그 안에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깨끗이 그만두기로. 좌절을 맛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오구는 지금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문 작가는 6개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8시간을 수정작업에 쏟았다. 이모티콘 총 14개 세트를 작업했으니 캐릭터만 최소 334개를 그려낸 셈이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지만 심사의 벽은 한없이 높기만 했다. 모바일 메신저 이모티콘은 심사를 통과해야만 출시되는데, 14개 세트가 줄줄이 미승인을 받은 것이다. 도전을 멈출 법도 한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15번째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그리고 드디어 승인이 났다. 그렇게 출시된 이모티콘은 첫 날 6위, 이튿 날 1위를 차지했다.

캐릭터 ‘오구’의 시작이 된 램프. 졸업전시를 위해 문 작가가 도자기로 빚어낸 것이다.캐릭터 ‘오구’의 시작이 된 램프. 졸업전시를 위해 문 작가가 도자기로 빚어낸 것이다.


‘오구’ 램프 구워내기 전의 모습.‘오구’ 램프 구워내기 전의 모습.


-오구라는 캐릭터로 오리너구리를 알게 됐어요. 흔한 종은 아니잖아요. 동물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갖게 됐나요?

△ 어렸을 때부터 동물퀴즈 챙겨보는 걸 좋아했어요.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광팬이기도 하고요. 동물을 모티브로 진화하는 이야기 구조가 흥미로웠어요. 경기도 끝자락에 살아서 시골에 사는거나 비슷했는데 곤충채집, 개구리 잡기를 하면서 놀던 시절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그래서 오리너구리는 저한테 친숙한 동물이었어요. 다들 그 존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출시되고 나서 생소하다는 반응에 되레 제가 놀랐죠. 졸업전시 때문에 도자기를 만들어야 했는데,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일반적인 동물보다 생소하면서도 귀여운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오리너구리가 딱 이었죠. 그렇게 오구는 도자기 조명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어요.

이모티콘 ‘오구’의 초기 버전. 지금보다 부리가 더 길고 꼬리가 더 얇다.이모티콘 ‘오구’의 초기 버전. 지금보다 부리가 더 길고 꼬리가 더 얇다.


6개월간의 수정과정을 거친 ‘오구’의 현재 버전.6개월간의 수정과정을 거친 ‘오구’의 현재 버전.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더 어렵죠. 단순하게 특징을 부각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처음 나온 오구는 오리너구리에 더 가까웠어요. 물갈퀴도 있고, 주둥이도 더 길었고요. 선 터치 하나가 캐릭터의 이미지를 만들어요. 흔한듯 하지만 흔하지 않게 디테일을 더했다가, 과하다 싶으면 덜어내는 과정을 반복했죠. 기본형을 먼저 그리고 특징을 주는 방식으로요. ‘긴 거, 작은 거, 짧은 거, 사각형’ 이런 식으로 큰 틀로 덩어리를 만들어요. 그 다음에 귀를 붙이거나 몸을 늘리거나 꼬리를 넣죠. 오구는 타원형에서 시작해 부리를 빼고 꼬리를 넓적하게 만들었어요. 초기엔 발에 물갈퀴를 넣었지만 지금은 덜어냈죠. 사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캐릭터 이름이에요. ‘오구=오리너구리’라는 제목으로 규정하는 거죠. 대놓고 얘기해주는 게 가장 명확하잖아요.

-오구의 타깃은 1020인가요?

△네, 20대가 주 타깃이에요. 이모티콘 선호도는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나요. 1020은 비교적 단순한 캐릭터를 좋아하고 3040은 색감이 강하고 좀 더 사람에 가까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오구는 10대에서 30대 초반까지가 주 타깃층인 셈이죠.

-14번이나 이모티콘 승인이 거절됐는데도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요?

△시장진입 타이밍 때문이에요. 처음 낸 이모티콘은 2017년 7월이었는데 당시 시장이 과열되지 않은 상태라 바로 승인이 났어요. 두 번째도요. 14번 퇴짜를 맞은 과정도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에 캐릭터를 최적화시키는 ‘약’이 됐다고 생각해요. 당시 취업을 준비하면서 하루 8시간씩 그림을 그렸는데 수많은 미승인들이 완성도는 높이고 구성은 다듬을 수 있게 해준 거죠.

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아기오구.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아기오구.


-이모티콘은 사용자를 대변하는 역할이잖아요.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감정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 내가 하고 싶은 표현들을 넣었어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트렌드가 되는 언어들을 사용하면서요. 지금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적극 활용합니다. 질문과 댓글의 답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오구가 어른이라면 아기오구는 말 그대로 어린아이에요. 그런 성격을 이모티콘에도 녹이려 노력해요. 하지만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보니 그런 이유에서라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해요. 짧은 만화처럼 그림 여러 장을 연결해서요.



오구 스케치. 문 작가는 “하나의 이모티콘을 출시하려면 최소 100여개의 스케치를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오구 스케치. 문 작가는 “하나의 이모티콘을 출시하려면 최소 100여개의 스케치를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바로바로 이미지가 떠오를 때는 한 세트 완성에 10일 정도 소요되지만 한 달이나 두 달이 걸리기도 해요. 움직이는 이모티콘은 모션이 중요한데 한 세트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편이에요.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전공을 살려서 도자기와 관련된 제품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워 그만뒀던 건데, 준비가 되는 언젠가는 꼭이요.

/사진제공=문종범작가

캐릭터 ‘오구’의 작가 문종범씨.캐릭터 ‘오구’의 작가 문종범씨.


-문종범의 취향에 관하여

-최근 산 물건은.

△스티키몬스터랩 손오공 피규어.

-스스로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크리에이터.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공포영화. ‘마마’, ‘28주후’ 모두 재미있게 봤다. 공포웹툰 ‘먹이’도 즐겨본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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