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뜬금없이 제기한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에 대해 정부가 답을 내놓는 데 뜸을 들이고 있다. 우리가 미처 깨달을 틈이 없었지만 경제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00년대 초부터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해 통계를 작성하고 있으며, 세계은행은 한국을 다섯 개 소득 그룹 중 최상위인 고소득국가에 넣고 있다. 한국은 2010년 개발도상국을 원조하는 나라의 모임인 경제협력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개도국을 도와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도국 논란에 선뜻 종지부를 찍지 못한 것은 개도국이 누리는 혜택과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기 아까워서다. 개도국은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한국의 철도 항만 농업개발을 위한 차관을 세계은행으로부터 도입하는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개도국 상품은 해외에 수출될 때 선진국 상품에 비해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데, 이 같은 특혜관세는 한국의 경제개발 초기 공단에서 만든 많은 섬유·전자 제품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개도국은 국제협상에서 시장개방과 관세 감축의 의무를 덜 받는다. 한국은 1987~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업부문의 개도국 지위를 주장해, 선진국에 비해 낮은 정도의 시장개방을 했다. 예를 들어 일본은 국내 쌀 소비량의 4%부터 수입을 시작했으나 한국은 1%부터 수입했다. 한국은 2001년부터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에서도 개도국 지위로 협상했는데, 이 DDA 협상은 현재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WTO 협상에서의 개도국 지위는 당사국이 스스로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그러잖아도 WTO를 못마땅히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개도국이 될 수 없는 나라의 기준으로 고소득국, 주요20개국(G20), OECD 회원국, 세계무역에서의 비중이 높은 국가 등 네 가지를 제시하고, 미 무역대표부(USTR)가 다음달 23일까지 부당하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나라가 있는지 판단해 리스트를 발표하도록 했다.
미국이 겨냥하는 주된 나라는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와 13%라는 세계 1위의 수출 점유율을 가진 중국이지만, 자칫 불똥이 튈까 우려한 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 등은 일찌감치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우리 정부도 개도국 지위 포기로 가닥을 잡은 듯하지만 농업에 대한 영향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위치에서 협상하면 관세 감축폭이 확대되고, 특별관심 품목에 대한 예외의 폭이 좁아지며, 농업 보조금을 줄 수 있는 기준이 더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농업 개방에 관한 문제, 특히 미국의 요구로 불거진 문제는 광우병 사례처럼 이성을 뛰어넘는 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한 우리가 마냥 개도국 지위에 의지할 수는 없다. 앞으로 협상에서 쌀 등 민감품목에서의 국익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대내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바른 해법이다. 개도국 논란이 있는 나라 중 고소득국, G20 회원, OECD 회원, 주요무역국 네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만큼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원래 선진국에 대칭되는 말은 후진국이지만 부정적인 뉘앙스 때문에 ‘발전하고 있는(developing)’ 나라라는 뜻의 개발도상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든 누구든 외국 사람이 우리를 보고 ‘한국이 후진국인가’라고 물었다면 당연히 ‘노’라고 답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