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역 사법수장을 만나다] 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 "국민 '法감정' 존중하되 휘둘려선 안돼"

인권·자유·생존권 등 변하지 않는

'헌법정신' 기반으로 공정한 판결

학생 대상 '주니어 로스쿨' 시행

법원 문턱 낮춰 신뢰도 제고 앞장

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이 23일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집무실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사진제공=제주지법이창한 제주지방법원장이 23일 제주시 제주지방법원 집무실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사진제공=제주지법



“존경하는 대법관이 계셨어요. 사건을 판결할 때 무엇을 가장 중시해야 하냐고 여쭤보니 인권·자유·생존권 등의 ‘헌법정신’이라고 얘기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 늘 ‘모든 법의 어머니 법’인 헌법을 가슴에 새깁니다.”

23일 청사 주변이 야자수가 우거진 제주지방법원에서 만난 이창한(56·사법연수원 18기·사진) 법원장은 판결 철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시대 상황이나 가치관 변화에 따라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으로 혹은 그 반대로 법 해석이 바뀌는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선 법의 기초인 헌법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의미다.


이 법원장의 판결 철학은 판사로 부임한 후 방청석에 앉아 관심 있는 사건의 재판을 방청하고 나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방청석에 앉아 재판을 보다 보니 재판부와 당사자 간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가 멀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며 “이론상의 구술변론주의나 공판중심주의가 현실의 법정에서 구현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을 새삼 깨달았다”고 털어 놓았다.

이 법원장은 진실에 다가가면서도 공정성이 담보된 판결을 위해서는 입법목적을 염두에 두고 것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여론 감정에 휘둘려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법감정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때로는 모두가 ‘네’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판사에겐 필요하다”며 “판단의 옳고 그름은 사법부 체계 안에서 상소 등의 불복절차를 밟아 재판될 수 있으니 언론과 국민분들이 판결을 신뢰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최근 판사의 판결에 불복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법원 신뢰도가 낮아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이 법원장은 우려를 표했다. 사법부 존립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결국 사법부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좋은 재판’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판사”라면서도 “최종적으로 분쟁을 해결 할 수 있는 곳이 법원이니 국민들의 기대를 만족하도록 판사들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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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원장은 이런 측면에서 노모의 당부는 자신이 판사로서의 삶에 중요한 지침이 되어 왔다고 귀띔했다. 그는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당부는 판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라며 “판사로서의 양식과 법에 따라 주변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모든 사건을 헌법의 큰 틀 속에서 바라보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법원장은 사법 제도의 회복을 위해 법원의 운영체계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제주법원은 그 일환으로 학생들을 상대로 법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주니어로스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제주지방법원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주대학교 로스쿨 등이 협력해 지역 청소년에게 기본 법교육과 모의재판 등을 진행하는 법률교육과 법률문화환경을 조성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11기 수료생까지 배출했다. 그는 “법원의 업무 내용과 사건처리 절차를 국민들이 잘 모르신다”며 “법원의 여러가지 절차와 법률지식 등을 어렸을 때부터 인식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법원을 친숙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대한민국 유일의 도서지역 사법 수장인 법원장은 제주도에 대해 ‘지역사회’적인 자치문화가 활성화한 곳이라는 지역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제주법원에 부임한 지 6개월 정도 흐른 지금 그는 “자연이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유산이 있는 제주도는 거친 자연과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곳”이라며 “그래서인지 지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자치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법원 직원들도 서로 친·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아 업무가 좀 더 유기적으로 굴러간다고도 이 법원장은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법원장은 “법원장 역할을 맡는 동안 소속법원 판사들이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직원들이 좋은 근무여건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도민들이 편하게 찾아 법을 만날 수 있는 사법서비스의 장으로 제주법원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1963년 순천 △1982년 순천고 졸업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 합격 △1987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 졸업 △1989년 제18기 사법연수원 수료 △1992년 광주지법 판사 △1999년 광주고법 판사 △2002 대법원 재판연구관 △2008년 전주지법 군산지원장 △2014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2016년 광주고법 수석부장판사 △2019년 제주지방법원장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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