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뒤죽박죽된 시간에 미래를 담다

아트선재센터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 기획전

복잡하고도 기묘한 작품 통해

인간의 욕망·이중적 자아 표현

미래에 대한 상상·깨달음 전해

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이 달팽이와 인간을 결합해 창조한 ‘스네일리언’이 등장하는 설치작품.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이 달팽이와 인간을 결합해 창조한 ‘스네일리언’이 등장하는 설치작품.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코가 길고 축 늘어졌다 싶었더니 달팽이 몸통이 달렸다. 달팽이과 인간이 결합한 ‘스네일리언(Snailian)’이다. 협업 작가 윌 베네딕트와 스테펜 요르겐센이 작품을 위해 창조한 스네일리언은 식료품 배달원이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직업을 가진 그가 느릿한 달팽이와 합쳐진 반인반수라니, 설정부터 기이하다. 그가 등장하는 영상작품 ‘더 레스토랑’은 6편의 우화를 통해 세계의 불평등과 사소한 일상이 만나는 지점을 쫓아다닌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에서 11월17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에서 만난 작품이다.

전시제목부터 골치 아프다. 덴마크 쿤스트할오르후스(오르후스 미술관)의 예술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가 총 10회를 예정하고 기획한 전시로, 이번이 네 번째 전시인데 숫자 1이 붙었다. SF영화 ‘스타워즈’의 개봉순서를 차용했다. ‘스타워즈’의 미래도 과거도 아닌 듯 모호한 배경이 실마리다. 전시장에서 만난 파브리시우스는 “이 전시를 기획할 당시 시리아 전쟁이 한창이었는데 드론을 띄워 하이테크 전쟁을 치르면서도, 적군 한 명의 목을 베는 원시적인 전쟁 방법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면서 “기술·사회적으로 많이 발달한 것 같으면서도 원시적이고 단순한 점도 많은 세상이라 계몽 시대 이전 유럽의 중세나 막연한 미래 같은 특정 시간대를 다루는 게 아니라 두 시간대를 겹쳐서 자유롭게 생각해보자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띄어쓰기 없이 제목을 적은 것도 같은 의도다. 국내외 20여 명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는 인류의 현재를 고찰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 보여준다.



아니아라 오만의 마스크 작품.아니아라 오만의 마스크 작품.


아니아라 오만의 마스크 작품.아니아라 오만의 마스크 작품.


아니아라 오만의 작품들은 작가의 얼굴을 얇은 마스크로 본 뜬 형태다. 게딱지·전분·금분·나무·타피오카·진주·한천 등 ‘친환경 재료’를 이용했지만 결과물은 한마디로 징그럽다. 인류가 상상하는 미래는 인간중심주의라고, 결국 남는 것은 유기물과 얇은 얼굴 껍질뿐이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3층 전시장에 올라가면 관람 도중 조용히 발밑에서 움직이는 ‘어떤 것’ 때문에 놀라기 일쑤인데, 오만의 또 다른 작품이다. 특유의 마스크와 로봇청소기를 결합한 ‘최후의 화신’인데, 둥근 청소기 위에 얼굴만 놓인 형상이다. 육체의 퇴화에 오싹하고, 감시하듯 따라다니는 움직임에 섬뜩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전시장 안쪽 방에 등신상으로 제작된 ‘스네일리언’ 설치작품까지 마주친다면 놀람은 가중된다.

최고은의 창문 설치작품.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최고은의 창문 설치작품.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최고은의 창문 설치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와 종교화의 형식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금기시 된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최고은의 창문 설치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와 종교화의 형식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금기시 된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


전시는 전반적으로 불편하다. 좀 화사하다 싶은 최고은의 창문 작업은 스테인트글라스 형식으로 만든 종교적 삼면화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도발적이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목소리를 포기했지만 물거품으로 사라졌고, 처녀의 몸으로 임신한 ‘성모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위해 삶을 헌신했으며, ‘선녀’는 나무꾼에 의해 강제로 붙잡혀 살다 하늘로 탈출한다.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쾌락의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복잡한 이미지들은 억눌린 성적 욕망,감시 등 불경스런 이미지와 혼재돼 있다. 라익스아카데미 입주작가인 이미래의 작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이다. 비틀리는 기계에서 끈적한 액체가 떨어지는 모습이 불쾌할 수도 있다. 기계와 결합해 새로운 진화의 상태를 향해 가는 삶의 초기 단계라 생각한다면 더 끔찍하다.

오바르타시 작품들 설치 전경.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오바르타시 작품들 설치 전경. /사진제공=아트선재센터


그림을 벽에 걸지 않고 양면 액자에 넣어 앞뒤로 돌려가며 볼 수 있게 전시한 오바르타시의 작품은 기묘하지만 매혹적이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찾아낸 형상 같으면서도 실상은 한번도 지구에 존재한 적 없는 생명체를 그렸다. 오바르타시는 덴마크어로 ‘바보들의 머리’라는 뜻인데 1929년부터 56년간 정신병원에서 지낸 작가가 붙인 예명이다. 1950년대에 일찍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택한 인물인데 작품에도 이중적 자아, 인간과 동물 사이의 변형, 광기, 소외된 몸 등이 투영됐다.


관람 후에는 머리가 좀 아프고 기분도 좋지만은 않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깨달은 만큼 중압감이 큰 탓이다. 전시는 동시대 미술이 감상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일깨운다. 기획자 파브리시우스는 내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됐기에, 내년 전시를 미리 가늠해 볼 수도 있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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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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