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의 올해 프로야구 성적이 꼴찌로 확정됐다. ‘올해는 잘하겠지’라며 스스로 주문을 걸었던 팬들은 또다시 절망의 늪에 빠졌다. 지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롯데 성적인 ‘8888577’ 때문에 타 구단 팬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전례가 있는 롯데 팬들은 15년 만에 다시 살아난 롯데의 꼴찌 근성 때문에 또 한 번 놀림거리가 됐다. 롯데에 또 암흑기가 찾아오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 속에 1992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송정규(67·사진) 전 롯데 자이언츠 단장을 만났다. 그는 선원(船員) 출신으로 부산을 상징하는 해양과 야구 두 분야를 섭렵한 ‘해양인’이자 롯데의 ‘마지막 우승 단장’으로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다. 또 주식투자자문사 대표,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한국해사법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현재는 부산항에 입·출항하는 선박에 승선해 선장으로부터 지휘 권한을 위임받아 안전하게 선박을 이끄는, 국가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은 최고 수준의 선장인 도선사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7월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필승전략 롯데 자이언츠 Top Secret’을 쓴 과거 행적이 화제가 되며 ‘송정규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는 당시 지리멸렬하는 롯데의 상황을 보고 구단에 부진 탈출과 우승의 전략을 제시하려고 저술한 책 덕분에 롯데 단장으로 발탁됐다. 최근에는 식당 등에서 그를 알아본 롯데 팬의 사인 요청도 종종 목격될 정도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롯데 그룹 간부를 야구단에 보내는 방식은 중단해야 한다”“선수들이 다른 구단에서는 잘하는데 롯데만 오면 못 한다” 등 롯데 팬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긁는 발언으로 팬심을 자극한 덕분이다.
그는 롯데에 대해 “우승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거나 운영 방법이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유로는 “단장과 감독, 코치진 선정이나 2·3군 육성방법 등에 있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여론에 따라 편승하는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팀 운영을 하다 보니 매년 발전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적정 연봉에 대한 세밀한 기준이 없어서 필요한 선수를 놓치고 팀에 도움이 덜 되는 선수를 높은 연봉을 주고 데려오는 일이 잦아 선수들이 무기력증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또 “손승락은 마무리 투수, 이대호는 4번 타자라는 공식도 틀렸다”며 “간판선수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즉시 2군으로 내려보내야 하는 게 프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히 적당주의를 경계했다. 송 전 단장은 “도선에서도 야구에서도 적당주의는 도움이 안 된다”며 “항구로 들어온 선박을 안전한 수로로 안내하는 일을 적당하게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듯이 롯데 구단과 선수는 ‘오늘만 하나’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서기 때문에 우승할 수가 없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성적이 바닥을 치는데도 경기 때 희희낙락거리는 모습을 대표적으로 꼽
았다.
단호한 어조로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내는 송 전 단장의 모습은 강건했다. 흐트러짐 없이 빗은 머리에 구김 없는 흰 셔츠와 정장, 잘 관리된 듯한 정갈한 구두 차림의 모습과 반듯한 자세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했다. 송 전 단장은 부산 경남고를 졸업한 뒤 선장과 같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격증을 취득해야겠다는 판단에 따라 한국해양대에 진학했다. 이후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경우처럼 정부의 선원 해외 송출 정책에 따라 1976년 5월부터 미국 해운회사의 라스코(Lasco) 상선에서 3등 항해사로 근무하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같은 해 11월 2등 항해사로, 1978년 1월 1등 항해사로 진급했다.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뚜렷한 만큼 선상에서 술과 담배는 물론 도박 등을 일절 하지 않았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영어와 일본어로 된 해운 또는 야구 서적 등을 보며 공부했고 선내 질서를 확립하는 방안을 찾는 데도 애를 썼다. 외국국적 선박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묵묵히 버티면서 3년6개월간 오대양을 누빈 끝에 미국 스콜피오(Scorpio) 선박관리 회사에서 견습 선장(Acting Captain)을 지냈고 1980년 5월에는 만 27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최연소 상선 선장’을 맡았다.
외국 기항지에서는 다양한 계층을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송 전 단장은 “특히 미국 항구에 기항할 때마다 뉴욕 시내 등을 밤낮없이 둘러보며 사업구상을 했다”며 “호텔 운영방법을 파악하려고 맨해튼 5성급 호텔에 25일간을 머문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젊은 나이에 6만5,000톤급 상선의 선장을 한 덕분에 두둑한 배짱과 냉철한 분석력 등을 갖췄다고 판단하고 1987년 해상생활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외국의 유명선주들과 사업을 하려고 선박관리회사를 설립했지만 경험부족으로 마지막 계약단계에서 번번이 실패를 맛봤다. 송 전 단장은 “A4 용지 30장 안팎에 선원과 선박 관리 방안을 담아 대형 선박회사들의 사장과 부사장 등을 무작정 찾아다녔다”며 “초대형 유조선 등을 맡기겠다는 제안도 받았으나 결국 관리한 선박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이 중단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후 델타기획과 델타인베스트먼트클럽을 세웠다. 컴퓨터 몇 대를 놓고 특정 주식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매매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였다. 이때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 종전되면서 우량 건설주가 크게 오르면서 많은 돈을 벌었으나 1989년 주식 시장이 급격히 떨어지자 손을 뗐다. 이후 출판·무역회사 등을 경영했다.
이 와중에서도 롯데 야구경기는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하위권을 맴도는 롯데의 경기내용에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작전, 선수 기용 등에 문제가 많았다는 게 송 전 단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필승전략 롯데자이언츠 Top Secret’을 썼다. 송 전 단장은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방법이 아닌 체계적인 구단 운영과 우승 전략을 글로 알리자는 취지에서였다”며 “골수 팬의 입장으로 구단에 선수단 운영과 경기내용 등에 대한 제언을 열정적으로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분노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6개월간 매달린 끝에 1990년에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이 입소문이 나면서 송 전 단장은 롯데자이언츠 프로야구단 단장으로 오라는 제의를 받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단장을 맡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취임 당시 38세로 최연소 야구단장이었다.
단장직에서 물러난 송 전 단장은 1993년부터 다시 미국 라스코 해운에서 선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2000년 국가 도선사 시험에 1등으로 합격하고 현재까지 부산항 도선사로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량의 99%를 상선으로 운송하고 있기 때문에 송 전 단장은 국가 경제를 피부로 느끼는 최일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부회장, 해양수산부 물류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해 해양 관련 전문적 지식에도 밝다.
송 전 단장은 해양·항만 분야를 들여다본 경험을 토대로 “부산항을 비롯한 국내 항만이 세계 유수의 항구인 싱가포르·상하이·로테르담 등을 넘어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양·물류·항만에다가 조선까지 아우를 수 있는 ‘대통령 직속 국가 해양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최대 해운선사였던 한진해운의 도산으로 아시아와 미국 간 해상운임이 즉각 폭등해 국내 수출기업들의 물류비 부담과 경쟁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사례를 들면서다. 송 전 단장은 “세계 해운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워 상대 선사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치킨게임’으로 치달은 지 이미 오래”라고 설명했다. 덴마크의 머스크(Maersk) 라인이나 스위스의 M.S.C. 등 최상위 컨테이너 선사들은 2M 얼라이언스를 앞세워 세계 해운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이는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장기 저성장 시대에는 해당 분야에서 1등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고 해운·항만·물류와 같이 글로벌 경쟁을 펼쳐야 하는 산업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처럼 관이 주도할 경우 융통성과 탄력성의 상대적 부족으로 시기를 놓치거나 경직된 시각으로 업계의 경쟁력에 지대한 걸림돌이 되고 결과적으로 국제 경쟁 속에서 한국이 뒤떨어질 수 있다”며 “상기 산업의 코디네이터로 이들을 선도할 수 있고 방향성 있는 효율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위원회’의 존재가 당장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래야만 각 부서의 이기주의에 따른 좁은 시안과 부서 다툼으로 인한 비효율성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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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대전 △경남고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한국해양대 경영학 박사△스콜피오 상선 선장 △델타기획·델타인베스트먼트클럽 대표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단장·관리이사 △라스코 상선 선장 △부산항도선사회 회장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부회장 △한국해사법학회 회장 △한국해사법학회 회장 △한국도선사협회 회장 △최동원기념야구박물관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부산항 도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