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내년초 반도체 등 5대품목 기술자립 해법 내놓을 것"

[서경이 만난 사람]

자율차는 '기술개발+제도적 허점 해소' 패키지 정책 추진

정부 예산만 빼먹는 '떴다방식' 연구개발사업 철저히 색출

신약 개발 실패해도 백업물질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9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기자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9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앞으로 정부 예산만 노리고 몰려드는 ‘떴다방’식 연구개발(R&D) 사업은 없어질 겁니다.”

정부의 R&D 예산 규모가 내년도 24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한 가운데 해당 정책 사령탑이 불필요한 재정 누수를 확실히 차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취임 넉 달째를 넘긴 김성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9일 서울 충무로의 한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하며 밝힌 각오다. 과기혁신본부장은 정부조직법상 ‘정무직 정부위원’으로 현 정부 들어 국무회의에 참석하게 돼 일반 차관급보다 서열이 높고 장관급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게 됐다.


김 본부장은 “긴급한 R&D 사업은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예산 편성 여부를 판가름하는) 예비타당성조사 절차를 면제해주겠지만 이것이 예산거품이나 낭비사업으로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맥락에서 “예타 면제가 되는 국가 R&D 사업은 6개월 내 적정성 검토를 꼼꼼히 하겠다”며 “이를 통해 문제가 있는 사업은 철저히 걷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는 2020년도 예산부터 신규로 들어간 R&D 사업은 특별관리해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는 “해당 사업의 책임 있는 분들과 소통해 시급하고 꼭 필요한 사업을 확실히 반영하며 ‘가려운 곳은 긁어주고’ 후속조치가 빈틈없이 잘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의 이 같은 발언은 기초 및 응용과학기술에 대한 정부 투자가 해마다 급증해온 반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는 크지 않다는 여론을 수용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5개년 살림계획인 중장기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 R&D 예산은 올해부터 5년간 연평균 10.8% 늘어 2023년에는 30조원을 돌파하게 된다. 이는 해당 연도 정부 총지출의 무려 5%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재원규모가 커지면 오로지 예산을 타내기 위해 실효성·혁신성이 없는 R&D 기획안을 제출하려는 일부 연구기관이나 연구자가 나올 수 있으므로 이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게 김 본부장의 방침이다.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30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30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성형주기자


그는 거대해진 국가 R&D 예산을 효과적으로 배분해 성과를 내기 위한 비장의 무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대한민국 정부의 혁신사례로 인정한 ‘파이(PIE)시스템’을 꼽았다. 이는 우리 정부가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기술 등을 응용해 도입한 R&D 투자 플랫폼이다. 해당 플랫폼을 이용하면 단순히 중요한 R&D 사업에 나랏돈만 배분하던 기존과 달리 분야별로 해당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력양성과 제도개선까지 한 묶음(패키지)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예산배분 및 조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활용된다. 여기에 더해 연구과제·연구비·연구자 정보를 통합 구축하는 연구지원시스템(PMS) 등도 함께 운용함으로써 우리나라 R&D 투자의 빈틈을 찾아 지원하고, 중복투자는 지양하겠다고 김 본부장은 다짐했다.


그는 특히 자율자동차차 분야에 대해 “기존에는 센서나 소프트웨어 등의 단순 기술개발에 치중한 나머지 향후 상용화할 경우 발생 가능한 제도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이 소홀했다”고 진단했다. 자율차 산업을 육성한다면서 지금까지 정부가 관련 예산을 얼마나 지원하고 부처별로 어떤 역할을 할지 정도만 봤지만, 막상 기술이 있어도 근거법이 없어 실제 도로 주행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자율차에 대한 요소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개발 투자뿐 아니라 도로교통 및 신호체계 등과 같은 제도적 분야까지 빈틈없이 패키지 정책으로 지원해 R&D 성과가 성공적으로 상용화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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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국가 R&D 지원정책 혁신이 최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분야가 일명 ‘소부장 연구개발 대책(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 투자전략 및 혁신대책)’이다. 근래 일본의 무역보복을 계기로 우리 산업 및 과학기술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지난 8월28일 정부가 발표했다. 김 본부장은 소부장 연구개발 대책에 따른 후속 실행방안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핵심품목을 중심으로 소재·부품 PIE시스템을 구축하고 진단해 이를 바탕으로 예산 배분·조정을 수행해나갈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또 PIE분석을 통해 해당 분야의 투자필요 영역을 사업부처에 제시하고, 사업부처는 투자필요 분야에 대한 신규 R&D 공동·협업 기획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 시급한 5대 중점분야 핵심품목(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기계·금속 등) 에 대해 늦어도 내년 초까지 해당 분야의 기술적 취약점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진단을 끝내겠다고 김 본부장은 소개했다. 이를 통해 해당 분야 R&D 투자의 범부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파이시스템 우선적용 대상 5대 분야를 포함해 최소한 10대 분야를 최우선적으로 완벽하게 분석해 해법을 제시할 방침이다. 물론 세계적 분업체계를 감안할 때 모든 품목의 국산화 자립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안보상 수급위험이 큰 품목과 주력산업 및 신산업에 대한 영향이 큰 품목부터 시급히 전략적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게 김 본부장의 방침이다.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9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29일 서울중앙우체국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그는 최근 잇따른 대내외 악재로 홍역을 앓고 있는 바이오·제약 업계와 관련해 “실패를 딛고 재도전할 수 있도록 차세대 유망신약의 사업화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신약개발에 대한 정책금융 및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등 민간 투자지원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재도전을 강조한 배경에 대해서는 “제약·바이오 분야는 R&D 중심의 기술집약적 특성으로 연구성과가 즉각적인 성공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실패 확률도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약 후보물질 중 최종적으로 사업화에 성공하는 것은 보통 1만개당 1개 수준이다. 따라서 유관 정부부처들이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수조원대의 사업비를 투입하고, 기업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신약 후보물질 개발부터 사업화에 이르는 전주기적 과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김 본부장은 말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업이 특정 신약 후보물질 개발 시 실패에 대비해 ‘대체선수’로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백업물질(대체 후보물질)도 함께 연구할 수 있도록 비용부담을 덜어주겠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하면 당초 추진하던 신약 후보물질 개발이 임상 단계 등에서 좌초하더라도 그간의 R&D 투자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백업물질 개발로 이어져 시너지와 재도전의 개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근래의 한 신약개발 실패의 경우 투자비용을 줄이려고 백업물질 개발 없이 (단일한) 후보물질 개발에만 올인하다 좌절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며 “바이오·제약 업체들이 이 같은 사례를 지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수장을 맡은 과기혁신본부는 지난 정부에서 부활한 뒤 현 정부 들어 한층 더 책임과 권한이 커졌다. 덕분에 일하는 범위는 늘었지만 정작 이를 감당할 인력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어서 당면한 현안 대응에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김 본부장은 “본부장에 취임하자마자 6월에 우리 본부에 대한 객관적 진단을 해보려고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겼는데 10월 초까지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며 “우리가 다루는 예산과 업무가 상당히 많이 늘어 거기에 맞춘 조직 확충도 필요할 수 있지만, 일단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최대한 효율화해 보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국가 R&D 정책과 투자를 총괄하는 역할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리 경제가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무버(선도주자)로 갈 수 있도록 R&D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담=민병권 바이오IT부 차장 newsroom@sedaily.com 정리=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He is

△1961년 서울 △대일고 △서울대 화학교육과 △KAIST 화학박사 △미국 하버드대 포스닥 △한국화합물은행장 △한국화학연구원 신약연구종합지원센터장·생명화학연구단장 △과학기술혁신본부 생명해양심의관 △교육과학기술부 생명공학종합정책심의위원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운영위원 △한국연구재단 비상임이사 △한국화학연구원장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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