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화성 사건 9건을 비롯해 다른 5건까지 모두 14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지난달 18일 화성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언론에 특정된 후 13일 만에 자신이 진범이라고 털어놓은 것이다. 특히 화성사건 5·7·9차에 이어 4차 사건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점이 이씨의 자백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강간·살해된 화성연쇄살인사건 가운데 8차 사건(모방범죄)을 뺀 나머지 9건과 다른 5건의 범행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다른 5건은 화성 사건 전후로 화성 일대에서 3건, 이씨가 충북 청주로 이사한 뒤 처제를 살해하기 전까지 2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 일대 3건에는 화성 사건 이전 화성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경찰은 화성 사건 외에 이씨가 군대를 제대한 1986년부터 처제 살해 사건으로 1994년 수감되기까지 화성과 청주 일대에서 발생한 유사사건과 이씨의 연관성도 조사해왔다.
경찰은 이날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이씨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대면조사를 진행했다. 용의자로 특정된 후 주말을 빼면 거의 매일 대면조사를 받은 셈이다. 이씨는 대면조사에서 계속 범행을 부인해오다 지난주부터 서서히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아홉 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5·7·9차 사건뿐 아니라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씨의 DNA가 나왔다는 점이 이씨가 입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4차 사건 증거물의 DNA 감정에서도 이씨의 DNA가 나온 사실을 토대로 그를 압박해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심리분석 전문가인 프로파일러의 역할도 컸다. 이번 대면조사에는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40) 경위 등 경기남부청 소속 프로파일러 3명을 비롯해 모두 9명의 프로파일러가 전격 투입됐다. 당시 살인 사건 목격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법최면 전문가를 투입한 점도 실마리를 제공했다. 경찰은 7차 사건 때 용의자와 마주친 당시 버스안내양 엄모씨를 대상으로 최근 법최면 조사를 진행했다. 엄씨는 이씨의 사진과 자신이 목격한 범인이 일치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러나 이씨가 DNA 검사 결과가 나온 직후에는 혐의를 부인하다 뒤늦게 자백한 점, 추후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당시 수사기록 등을 살펴보며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씨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자백 내용에 대한 수사기록 검토, 관련자 수사 등으로 자백의 신빙성·객관성 등을 확인해 수사 결과를 추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