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36> 최첨단 매장이라더니 '무늬만 無人'...일자리 창출에 역행도

■중국 '무인경제'의 두얼굴

소매·유통업 혁신 성공 기대에

알리바바·징둥 등 치열한 경쟁

신생기업까지 뛰어들어 난립

단순 바코드기술 등 잦은 오류

고객 외면에 2년만에 급속 냉각

경기둔화로 고용 우려 큰 中정부

'무인화' 마냥 반기기도 어려워

지난 2017년 11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북역의 역사 안에 무인(無人)마트와 무인식당이 들어섰다. 2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이 마트와 식당은 중국 내 기차역에 세워진 최초의 ‘무인매장’이어서 개장 초기 중국 매체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최근 기자가 방문했을 때 이 매장과 식당은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지만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매장 안에는 도우미 직원이 있어 손님들의 결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마트의 한 직원은 “시스템 사용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칭다오북역에서 무인매장과 대비되는 것은 역사에 상주하는 보안요원이다. 입구에서부터 수십명의 보안요원들이 배치돼 열차 이용 승객들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짐들을 일일이 검색하고 있었다. 매장 무인화를 통해 인건비를 절약하겠다고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테러 대비를 이유로 막대한 인력과 시설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보안요원 확대는 최근 경기둔화로 실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공공고용을 늘리는 차원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북역 역사에 있는 ‘무인마트’에서 손님들이 결제를 하고 있다. 무인마트를 표방하기 때문에 직원이 없어야 하지만 손님들의 불편을 이유로 종업원들이 배치돼 있다. 기존 편의점과 큰 차이 없이 운영되면서 ‘무인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문기자중국 산둥성 칭다오북역 역사에 있는 ‘무인마트’에서 손님들이 결제를 하고 있다. 무인마트를 표방하기 때문에 직원이 없어야 하지만 손님들의 불편을 이유로 종업원들이 배치돼 있다. 기존 편의점과 큰 차이 없이 운영되면서 ‘무인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문기자



소매·유통업에서 혁신의 총아로 한때 각광받았던 중국의 ‘무인경제’가 빠르게 식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산업에서 수위를 달리는 알리바바와 징둥 등이 오프라인 무인매장 확장 계획을 취소했으며 전문 스타트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코드, RFID 태그나 모바일결제 등 평범한 기존 기술을 사용해 성급히 확장한 무늬만 ‘무인화’가 오히려 무인경제라는 혁신의 이미지를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정도의 중진국이면서도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 적극적인 인력절감 노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무인경제’는 인간의 노동력이 아닌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로봇 등이 활용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즉 기술이 육체노동을 대체한다는 개념이다. 자동판매기나 셀프주유소, 코인 빨래방 등은 무인경제의 초기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공장 생산 라인에서의 자동화도 이에 포함된다. 문제는 인간의 노동력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또 면대면 접촉의 선호도가 높은 소매업이나 유통업에서의 무인경제 성공 여부다. 여기에는 보다 첨단기술이 사용되고 또 소비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중국의 무인경제는 ‘무인매장’을 대표로 빠르게 확산됐다. 알리바바나 징둥 등 거대 인터넷기업들이 시작했고 이어 다른 기술기업들도 속속 동참했다. 무인마트에서 무인식당·무인택배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하지만 붐이 시작되고 2년 남짓 만에 거품은 다시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무인매장이 인기를 끈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정보기술(IT) 업체들의 기술력 과시다. 알리바바나 징둥 등 중국 내 온라인 유통망을 장악한 기업들이 기존 전자상거래에서 익힌 기술과 정보력을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무인매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2015년 독일의 세빗 박람회에서 마윈 당시 알리바바 회장은 얼굴인식 지불 시스템을 시연하며 “현금이나 휴대폰 없이 얼굴만으로 결제되는 세상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알리바바는 무인매장 ‘타오카페’를 만들었고 무인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허마셴셩’ 사업을 시작했다. 징둥은 무인매장 ‘X마트’로 경쟁을 벌였다. 거대 인터넷기업에 이어 수십개의 중소형 스타트업들도 대거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아직까지 기존 오프라인 유통이 낙후돼 있어 어떤 사업 방식이라도 빠르게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에 조만간 닥쳐올 인구절벽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14억 인구의 무한 인력을 갖고 있다는 중국도 이제 인구 증가의 한계에 도달했다. 과거 정부의 ‘1가구 1자녀’ 정책 충격으로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빅뱅이 일어났다. 인력공급이 줄어들면서 인건비가 갑자기 뛰었고 이것이 소매·유통업자들에게 더욱 민감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이르면 오는 2023년에 절대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하기도 한다.

빅데이터에 대한 중국정부의 관심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 데이터 수집에 있어 한국 등 선진국들에 비해 까다로운 규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데이터를 쉽게 모으면서 이를 자신의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오히려 정부가 안보를 이유로 데이터 수집을 주도하기도 한다. 무인매장의 모든 거래기록은 그대로 남는데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 무인매장 붐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2016년 12월 미국 시애틀에서 무인매장 ‘아마존고’의 문을 열었다. 본격적인 일반인 고객 상대는 2018년 1월에 시작됐다. 매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구매 상품을 인식하고 결제는 고객 계정을 통해 자동으로 이뤄지는 첨단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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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창 아마존고가 실험 중일 때 지구 반대편의 중국에서는 ‘빙고박스’라는 스타트업이 선수를 쳤다. 빙고박스는 2016년 8월 광둥성 중산시에서 무인편의점을 시작했다. 다만 빙고박스는 처음부터 한계가 뚜렷했다. 아마존고가 혁신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빙고박스는 기존 기술을 조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구매 과정은 아마존고와 비슷하지만 별도의 쇼핑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지 않고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을 연동했다. 상품은 RFID 태그로 관리했다.

빙고박스의 깜짝 성공에 중국에서 무인매장 붐이 일기 시작했다. 무인매장 스타트업이 대거 나온 것과 함께 알리바바나 징둥 등 기존 전자상거래 업체가 참전하면서 시장 규모를 키웠다. 중국 전자상거래 2위 업체인 징둥이 적극적이었다. 징둥은 지난해 말 향후 5년간 1,000개의 무인마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개하고 잇따라 체인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런 무인마트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인매장은 올 들어 급격히 위축됐다. 무인매장에 적극적인 징둥마저 최근 대규모 확장계획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무인매장의 실패에 대해 기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 등 두 가지로 해석한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선택한 상품을 인식하고 결제까지 이어지는 무인결제 시스템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작은 오류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독특한 무인결제 방식을 처음 익히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도해봤던 사람들도 점차 외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인매장을 최첨단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얼굴인식 지불 시스템의 실패다. 알리바바는 2015년에 얼굴인식 지불 시스템을 처음 공개하고 정부의 지원 아래 확산에 애썼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이 시스템 적용은 지지부진하다. 이미 휴대폰을 이용한 알리페이에 소비자들이 만족하고 있는 상황에서 얼굴인식 지불 시스템이 생각만큼 혁신적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마저 “얼굴인식 지불 방식은 개인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지문이나 비밀번호 등을 전부 외부 기기와 서버를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이 크다”고 전했다.

무인매장에는 이외에도 출입문 개폐의 오류, 고객이 선택한 물품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 부실한 냉동보관·신선식품 관리 등 다양한 문제가 잇따랐다. 이름은 무인매장이지만 각종 오류에 신물이 난 매장 측은 도우미를 배치하는 것으로 방어를 했다. 사실상 유인매장이 된 것이다.

초기 성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앞다퉈 뛰어든 신생 기업들이 시장 물을 흐려놓았다는 지적도 있다. 바코드와 모바일결제만으로 무늬만 무인매장 사업을 시작하는 사례가 많았고 이것은 무인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 악화로 연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무인매장이 도입 초반에 소비자들의 흥미를 일시적으로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는 사라지고 불편함만 남았다”면서 “기업들이 인건비 절감만 고민했을 뿐 소비자의 특징들은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유통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인건비 상승을 유발하는 중국의 정치사회 상황이다. 시진핑 정부 들어 ‘사회안정’을 이유로 공공교통에 대거 보안요원들을 채용하면서 서비스업에 종사할 저임금 인력들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모든 지하철역에는 입구마다 5명 이상의 보안요원들이 승객들의 짐을 검색하고 있다. 여기에 플랫폼과 객차에도 보안요원이 있다. 베이징 시내에 200여개의 지하철역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베이징지하철공사 보안 담당만 수만명이 있는 셈이다.

각종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건물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안쪽에서는 무인매장이 돌아가고 바로 밖에서는 ‘유인경비’가 서 있는 것이 중국에서 점점 흔해지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 충격에 따른 경기둔화는 일자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시각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서비스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매장의 무인화는 이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경기둔화에 따라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중국 정부가 서비스업의 무인화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chsm@sedaily.com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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