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방랑자들]타인을 보듬는 시선...떠나보면 알게 될거야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민음사 펴냄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미투’(Mee Too·나도 당했다) 논란이 아니었다면 폴란드 출신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한 해에 세계 3대 문학상 (노벨문학상·맨부커상·콩쿠르상)중 2개를 석권하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8년 ‘방랑자들’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토카르추크는 최근 지난해 미투 논란 속에 발표되지 않았던 노벨문학상 2018년 수상자로 뒤늦게 선정됐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안고 국내 독자들 앞에 나온 ‘방랑자들’은 문학상 수상작이 난해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날려 버린다. 여행이 상징하는 떠남과 머무름과 관련된 100여 개의 단편을 엮은 소설이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편 한 편이 에세이에 가깝게 읽힌다. 정서적 이질감 역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소설 속 다양한 여행자들이 떠나고 머물고 다시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타인에 대한 시선은 차가운 관찰이라기보다는 연민과 공감을 담은 따뜻하고 섬세한 탐구다. “서쪽 어딘가에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나라가 있다고 믿으며 이상향을 찾아 헤매는 이민자들, 그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형제자매가 되고, 강력한 국가는 자국민을 부모처럼 돌봐줄 것이라고 믿었다.”(21쪽)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의 학문적 배경은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짧게는 10개 문장으로 구성된 단편은 물론 중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분량의 단편에 담긴 인간 심리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아포리즘(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으로 삼을 만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문장들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해 밑줄을 긋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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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겐 내면에 깊이 감춰진 결함이 있다. (중략) 만약 우리가 자신에게 합리화나 순화 작용, 자기부정이나 사소한 속임수 따위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고 용기 있게 직면하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의 심장은 터져 버리리라는 걸.”(25쪽)

“여행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욕망입니다. 바로 이 욕망이 인간에게 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고 어딘가로 향하려는 성향을 일깨웁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저 방향만을 가리킬 뿐, 목적지를 드러내진 않으니까요.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고 불확실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애매해지고 수수께끼 같아집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118~120쪽) 1만6,000원.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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