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늦게 청와대 녹지원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출입기자단 초청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마주한 음식들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주요 스텝들이 출입기자들과 열린 소통을 꾀한다는 행사의 목적에 맞춰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알차게 마련된 메뉴들이라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았다고 하는데요. 이번 행사의 케이터링을 책임진 곳에서는 수확을 앞둔 농어촌이 갑작스럽게 닥친 태풍으로 상심해 있을 것을 고려해 동해안 지역의 식자재를 최대한 활용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40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이 접하는 식사와 주류를 준비한 기업인 플레이팅과 어메이징 브루어리 모두 식음료(F&B) 분야 스타트업이라는 사실에 유독 눈길이 갑니다. 해당 기업들이 이번 행사 이전부터 상당 기간 실전에서 내공을 다져온 곳이지만, 청와대의 요청으로 행사를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플레이팅은 지난 2015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트업 창업과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장경욱 대표가 노무라연구소·이랜드 전략기획실 등에서 활동했던 남태욱 운영총괄이사와 함께 이끌고 있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입니다. 창업 초기에는 이 회사 전속셰프가 만든 요리를 일반 소비자들에게 배달로 전달하는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작년 8월부터 레드오션인 ‘배달시장’을 벗어나 비즈니스를 법인(B2B) 대상으로 변경해 연 매출 기준 5배 상승이란 대박을 터뜨린 곳이기도 합니다. 소규모 기업부터 수천여명이 근무하는 대기업까지 서비스 가능한 플레이팅은 임직원들의 시간과 기업 예산을 아끼면서도 제대로 된 점심 한 끼를 제공하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에어비앤비와 한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은 물론,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월례 행사인 디데이에 케이터링을 담당하는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곳입니다. ‘찾아가는 구내식당’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프리미엄 도시락이나 뷔페식 케이터링을 통해 기업 공간의 절약과 임직원들의 만족을 동시에 꾀한다고 합니다.
남 이사는 이번 행사의 콘셉트에 대해 “맥주를 마시며 편안하게 소통하는 야외 행사라는 점을 고려했다”며 “태풍 피해를 입은 지역 수산물을 포함해 국내산을 십분 활용해 수해민을 위로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으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만 늦가을 야외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의 계절적 특성상, 음식이 빠르게 식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며 “따뜻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도록 행사자 옆에 튀김기를 가져가고 진열 음식에 온열램프를 쏘는 등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주류 공급을 담당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어메이징 브루어리)는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곳입니다. 건대입구와 성수동, 잠실, 인천 송도에 직영 매장이 있고 그 외에도 생활맥주와 같은 호프들과 제품 공급 제휴관계에 있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마니아가 존재하는 수제 크래프트 맥주 업체입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이번 행사에 총 4종의 수제 맥주를 선보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 제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아내려 노력한 ‘성수동 페일에일’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데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성수동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 터줏대감이었던 공업사·도소매업을 하는 주변 소상공인과 소셜벤처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 관계자 등 5명을 모아 함께 레시피를 결정하고 양조를 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 맥주는 자몽이나 귤 향기로 통칭되는 시트러스 과일향이 은은하게 나기 때문에 수제 맥주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 김태경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대표는 “과거 성수동을 대변했던 제조업과 현재 성수동에서 활동하는 스타트업이 서로 어우러지는, 성수동 사람들의 취향을 담아 함께 만들려 노력했다”며 “저희의 대표 맥주인 ‘첫사랑 IPA’보다 청와대 행사에서 더욱 의미가 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밖에도 ‘밀땅 바이젠’, ‘쇼킹 스타우트’ 등이 행사장 테이블에 올랐습니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내달 1일부터 더 많은 소비자들과 밀착하기 위해 캔맥주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직영매장이나 제휴 호프 매장이 아니면 접하기 어려웠던 수제 크래프트 맥주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한 것인데요, 캔으로도 개성 넘치는 맥주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또한 지난 7월 9일 관련법이 바뀌면서 음식과 함께 주문한 주류의 배달이 합법화 됐는데요.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역시 바뀐 제도에 발맞춰 서울 잠실·논현·자양 주변 지역에 배달의 민족을 통한 배달 서비스도 도입한다고 합니다.
한편 이번 행사를 준비한 플레이팅·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두 곳은 취재에 응하면서 “저희가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은 것이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국내 스타트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기업들이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아 대규모 투자 유치에도 성공한 곳이지만, 매출로 몇 백배가 넘는 대기업에 비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례적인 청와대의 결정에 대해 스타트업계에서는 청와대가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스타트업 붐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연초 디캠프 방문 등과 함께 선언적으로 제시한, 혁신적 아이디어와 도전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제2 벤처붐’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는 지적도 함께 합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처음으로 벤처·스타트업 분야를 활성화 하겠다는 언급을 하고, 최근 다시금 ‘제2 벤처붐’이라는 단어를 꺼냈다”며 “다른 이도 아니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를 ‘스타트업’으로 지정한 만큼,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와대가 반짝 관심이 아니라 끝까지 지금처럼 스타트업 발전에 힘을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정부 의존도가 높은 한국 스타트업계가 민간의 힘만으로도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