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막걸리 먹고 싶다.”
지난 24일 저녁 일본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이낙연 국무총리는 성남공항 앞에 대기 중이던 수소차를 향해 걸어가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긴장을 풀 수 없었던 2박3일간의 일본 일정이 막 끝난 참이었다. 하지만 넥타이를 풀고 좋아하는 막걸리 한 잔을 할 틈은 없었다. 곧바로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빈소로 향했다. 늦은 밤, 이 총리는 과거 고인을 담당했던 기자이자 현직 총리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총리는 다음날 이른 아침 성남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울산으로 날아갔다. 현대중공업 뉴질랜드 군수지원함 명명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했다. 그리고 오후에 서울로 복귀해 의원들을 만나 방일 결과를 설명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보고서 검토는 차 안에서 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워커홀릭’ ‘외계체력’ 등으로 불리는 이 총리는 28일 최장수 국무총리가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880일을 재임한 김황식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 의외의 발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 지명됐던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마치 준비된 옷을 입은 듯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880일 동안 그는 차기 여권 대선주자 1위 자리에까지 올랐다. “살면서 그 어떤 길도 계획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언론인, 4선 의원, 도지사, 최장수 총리 역임 이후 다음 행선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커질 뿐이다.
◇‘만기친람’에 힘들 땐 마신다, 잔다, 읽는다=이 총리는 ‘호통을 쳤다’는 표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총리의 얼굴을 보면 ‘호통’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리는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장·차관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열린 아프리카돼지열병 범정부 대책회의 중에도 맡은 업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공무원에게 이 총리의 지적이 쏟아졌다. 샅샅이 파악하는 ‘만기친람’형인데다 특유의 저음 때문에 더 무섭다는 게 ‘이낙연식 호통’을 직접 겪은 공무원들의 전언이다.
비판이 타인에게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는 더 심하다. 지적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내색은 하지 않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해소법은 뭘까. 마땅한 취미는 없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총리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 탓에 악기도, 운동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무취미’인 이 총리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최근 열린 공무원 대상 정신건강 교육 프로그램에서 공개됐다. 강사의 요구에 이 총리는 스트레스 해소법 세 가지를 적어냈다. ‘마신다, 잔다, 읽는다.’
◇당 복귀설에 여의도에서는 환영·기대·반대=이 총리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단어는 ‘거취’다. 24일 귀국길에 가진 기내 간담회에서도 거취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늘 그렇듯이 “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본인도 모를 만하다. ‘최장수’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정도로 총리직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괜한 총리 교체로 국정운영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조국 사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장관에 이어 총리까지 인사 참사가 터질 경우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셈법은 복잡하다.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흔들리면서 선호도가 높은 인물을 당 간판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인 이 총리 카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총리의 복귀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문 대통령과 이 총리의 국정 호흡과는 별개로 ‘친문’ 주류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여전히 당내에 큰 세력이 없는 이 총리 대신 ‘PK(부산·경남) 대망론’을 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총리 본인의 의지는 어떨까. 힌트는 7월 방글라데시 등 4개국 순방 당시 이 총리의 발언 안에 있다. “여전히 제 심장은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