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재계 "공정위, 잇단 패소에 책임 떠넘겨"

■ 與 "일감 몰아주기 기업이 입증"

부당지원 행정소송 늘어나지만

공정위 '완전 승소' 단 2건 불과

"증거 확보 소송 원칙 위배" 지적

글로벌 기업활동 위축 우려도

0615A06 부당지원 제재



한진그룹은 지난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 처분에 반발해 소송전에 돌입했다. 당시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총수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싸이버스카이와 거래할 때 정상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매겨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2017년 9월 “공정위가 정상거래 가격을 내놓지 못한 데다 싸이버스카이가 대한항공과 거래를 통해 얻은 수입이 전체의 0.5%에 불과한 만큼 경제력 집중에 따른 ‘공정거래 저해성’이 없다”며 한진그룹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해 신설한 공정거래법 23조의 2를 처음으로 적용한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여당 일각에서 부당지원 행위의 입증 책임을 기업에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한진그룹의 사례에서 보듯 공정위가 시장의 경쟁 제한을 증명하지 못해 패소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공정위가 제재한 부당지원 사건에 대해 제기된 행정소송에서 10건의 확정판결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공정위가 완전 승소한 것은 CJ CGV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당행위 사건뿐이었다. 신세계·삼양식품(2건)·SK텔레콤·한국남동발전·한국수력원자력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은 모두 기업 측이 승소했다.


한국철도공사와 LS가 제기한 소송에서는 정상가격 산정이 잘못됐다거나 과징금 액수가 적절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공정위가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10대 그룹의 내부거래 규모가 2015년 122조9,000억원에서 2018년 151조1,000억원으로 늘어났음에도 이를 제재하는 공정거래법의 실효성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관련기사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진하는 개정안은 부당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공정위에서 기업으로 전환해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현행법과 달리 기업이 ‘A 계열사가 시장에서 원천 기술을 확보한 유일한 회사라 내부거래가 불가피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입증 책임을 지게 되면 결과적으로 공정위의 승소 비율이 그만큼 올라갈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상황에서 입증 주체까지 바뀌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유정주 기업혁신팀장은 “소송의 기본 원칙은 제재를 부과하거나 형사 처벌을 하는 ‘공격 진영’에서 범죄를 입증할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여당이 추진하는 방향대로 법이 개정되면 글로벌 무대에서 싸우는 기업들의 잇단 패소로 영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는 현재 공정위가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의견 수렴 중인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지침에는 대기업이 제3 자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총수 개인회사에 일감을 몰아줘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총수 일가가 한 푼이라도 부당 이익을 얻었다면 공정거래 저해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조항도 담겼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나윤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