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모병제 전환은 안보 위기를 야기한다”(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제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장경태 민주당 청년위원장)
“국방 보완책과 재원 마련 없이 성급히 추진한다면 그 부작용이 클 것”(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모병제 공론화할 때가 됐다. 보수·진보 넘어선 초당파적 이슈”(윤상현 한국당 의원)
최근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른 ‘모병제’를 두고 하루 안에 쏟아진 말들입니다. 여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소’가 이 문제를 정치권에 던졌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충돌했습니다. 제1야당인 한국당 역시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여당을 몰아세우는가 했더니 모병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조국 전 장관 문제, 검찰개혁법이나 선거제 개혁을 두고는 분명한 전선을 긋고 대립했던 여야가 이번만큼은 ‘전면전’이 아닌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 차원의 중론이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모병제 이슈가 떠올랐다는 분석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문제가 안보·계층·젠더를 아우르는 다층적인 사안이라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징병제’로 보병 수 유지…‘모병제’하고 군 첨단화 해야=모병제에 대한 엇갈리는 입장을 깊이 들여다보면 안보에 대한 시각차, 그 중에서도 ‘병력 수 유지’에 대한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 쪽은 병력 수가 줄더라도 장비를 첨단화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첨단과학기술 기반 정예강군, 이기는 군대로 과감한 개혁”을 외친 민주연구원의 의견과 같습니다. 윤상현 한국당 의원은 8일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현재의 전투장비는 고가의 첨단장비로 숙련된 직업군인이 다루어야 고도의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핵심 전투병과부터 직업군인제로 전환해야 한다. 직업의식으로 무장된 전투 요원은 현재 붕괴되고 있는 병영과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의당의 대표적인 군사통으로 꼽히는 김종대 의원 역시 비슷한 논리를 폈습니다. 김 의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보병 중심의 군대 운영은 2차 대전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전통적인 군사 사상은 한반도 전쟁에 먹히지 않는다”며 “지금은 속전속결 어떻게 결정적 작전(decisive operation)을 통해 빠르게 전쟁을 끝내야 할지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적어도 모병제 논의에 대해서는 한국당과 정의당 의원이 뜻을 같이한 셈입니다.
다른 측은 ‘징병제를 통한 병력 유지’를 내세웁니다. 군 장성 출신의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보병이 유지돼야 한다. 물론 첨단 무기가 도입돼 운용 병력은 필요하지만, 이를 핑계로 인위적으로 이를 핑계 삼아 사람을 줄이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보병 수 유지에 대한 필요성으로 ‘대한민국 지형의 특수성’을 꼽았습니다. 산악 지형이 70%인 우리나라 환경을 고려했을 때 기계화 대대의 운용은 제한적이고 대부분 보병 규모의 전투가 이뤄진다는 주장입니다.
◇=“군대는 가난한 이들이 모이는 곳 될것“ ”일자리 창출이 왜 나쁜가“
‘공정성 문제’는 모병제 논의의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일각에서는 모병제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데 반해 “일자리 창출이 뭐가 나쁘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7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회의에서 “근본적으로 모병제는 징병제에 비해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제도”라며 “실제로 모병제가 도입됐을 경우를 상상해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이 군에 가고 어떤 사람이 군에 안 가는 현상이 발생할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군대는 가난한 사람들만 가게 되는 곳이 되어 사회적 공정성을 해친다는 주장입니다. 김해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생각도 비슷합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격차 사회에서 징병제로 전환될 경우, 군대는 주로 경제적 약자 계층으로 구성되어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하고 사회 통합에 부정적인 영향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모병제 찬성 측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내세웁니다. 민주연구원은 관련 보고서에 “모병제 등으로 인해 사병 18만 감축 시 GDP 16.5조가 상승한다고 추정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 문건에는 “20대 남성 취업연령 감소로 경제성이 제고되고 모병제 자체로도 수십만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김종대 의원은 “빈민층이 군대에 들어가는 게 왜 나쁘냐”며 유 의원과 김 최고위원의 주장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군대는 신분 보장이 잘 돼 있는 집단”이라며 “취업의 기회가 가로막힌 빈민층이 좋은 직업을 갖고, 군대에서 자기 꿈을 꿀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기회제공으로 본다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민주硏 “모병제로 남녀갈등 자동 해결”…하태경 ‘여성희망복무제’로 돌파=군대 문제는 ‘젠더 갈등’의 단골 소재기도 합니다. 남녀평등에 대해 얘기할 때면 일부 남성들이 군대 얘기만 꺼낸다고 해서 ‘군무새’라는 용어도 있고, 남성들의 군 복무를 통한 희생을 “군 가산점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비장애인 남성의 특권”이라는 반대가 맞부딪치기도 합니다. 민주연구원은 “군가산점 역차별, 병역기피, 남녀간 갈등, 군 인권학대 및 부조리 등 문제를 자동해결”하는 열쇠로 모병제 전환을 꼽았습니다. 모병제를 통해 남성들이 강제로 희생당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들도 군에서 자기 직업을 가질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일부 의원들은 ‘안보론’과 ‘젠더론’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고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강한 안보’를 외치지만 ‘20대 남성의 대변자’를 자처하는 변혁 소속의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적입니다. 변혁을 대표하는 유승민 의원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징병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군 입대를 앞두거나 이 문제에 민감한 20대는 일반적으로 모병제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하 의원은 ‘여성희망복무제’라는 묘수로 돌파에 나섰습니다. 여성은 부사관과 장교로만 군에 갈 수 있지만 사병 복무는 불가능하다고 규정한 병역법을 고쳐 여성도 희망자에 한해 복무할 수 있게 하는 안입니다. 당장 실현할 수 없는 모병제에 찬성하지는 않되 여성들도 군 복무에 참여하도록 해 남성과의 형평성을 맞추자는 의도가 엿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