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WTO 한달 후 완전 마비…韓, 日 무역분쟁 적신호

■식물상태 전락 WTO

내달 상소기구 위원들 임기 만료

美, 선임 반대에 재판기능 상실

다자협상 이어 분쟁중재도 못해

韓-美 철강갈등 등 미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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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의 보루인 세계무역기구(WTO)가 한 달 후면 마비될 위기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WTO 체제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면서 전 세계 무역마찰을 중재하던 WTO의 분쟁 해결기능마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WTO는 이미 양대 기능 중 하나인 다자무역협상이 20년째 정체된 상태로, 분쟁 중재 역할까지 하지 못하게 되면 식물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WTO가 무력화하면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나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산업계의 피해는 사실상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의 보호무역 압박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WTO의 무역분쟁 해결 최종심의 상소기구 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다음달 10일 만료된다. WTO 상소기구는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무역분쟁을 조정하려면 최소 3명 이상의 위원이 필요하다. 현재 상소위원 중 4명은 임기가 만료됐으며 다음달 추가로 2명이 퇴임하면 상소기구는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미국은 표면적으로 상소기구의 절차적 결함과 불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상소위원 선임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은 상소기구 공백 상태를 우려해 WTO 각료회의와 통상장관회의 등에서 수차례 위원 선임을 개진하고 있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다. WTO의 의사결정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이뤄지는데다 창설을 주도한 미국이 반대하면 어떤 논의도 진전될 수 없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의 무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다자간 무역 체제를 무너뜨리고 힘의 논리가 잘 통하는 양자협상에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WTO를 통해 중국 등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낸다”며 “향후 WTO에서 새로운 다자협상은 고사하고 무역마찰조차 중재할 수 없게 된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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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WTO 마비 이후를 대비할 전담조직을 만들어 대안을 모색하려 하지만 상황을 반전 시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WTO 상소기구가 판결을 내리는 현 시스템에서 벗어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처럼 만장일치로 시비를 가리는 형태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다”며 “사실상 분쟁 조정이 불가능한 형태”라고 말했다.

WTO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면 미국이 양자협상에서 이득을 보기 위해 무역제재 조치를 남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특정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매겨도 제동을 걸 수단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WTO 분쟁 해결 절차 중 패널(1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미국이 상소 절차를 밟으면 담당 재판부가 없는 만큼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된다.

미국이 무역분쟁을 일으킨 사안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불리한 가용 정보(AFA·Adverse Facts Available)’ 조항을 들어 한국산 변압기와 철강 제품 등에 고율의 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해 우리 정부가 이에 반발하며 WTO에 제소했지만 1심에서 승소하더라도 상소기구 부재로 최종 판결은 무기한 연기될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일본이 7월 부당하게 한국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해 정부가 WTO에 제소한 상황이지만 이 역시 WTO 체제에서는 정당한 구제 조치를 받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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