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 진지시엔(20)씨는 “홍콩을 지지하는 한국 학생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다른 중국인 유학생 청모(21)씨도 “교내에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것을 알면서도 홍콩 지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중국인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싸움이 커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홍콩 시위가 나날이 격화하는 가운데 국내 대학가에서 한국 학생들과 중국인 유학생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들이 설치한 ‘레넌 벽’과 대자보·현수막을 중국인 유학생들이 훼손하거나 철거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면서 양측 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의 40%가 넘을 정도로 중국인 유학생이 늘어난 상황에서 홍콩 시위를 둘러싼 한국 학생과의 갈등 양상이 심화할 경우 자칫 대학가를 중심으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한양대에는 ‘한양대 전체 중국인 유학생’ 명의로 ‘홍콩 사태에 관한 해명’이라는 대자보가 게시됐다. 유학생들은 대자보에서 “우리 모든 중국인 학생은 어떤 개인 혹은 단체가 스스로 대자보를 찢어버리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반대한다”면서도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우리 민족 내부를 파괴하는 그 어떤 일도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3일 한양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인 유학생 50여명이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며 한국인 학생 10여명과 대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앞서 연세대와 고려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 현수막과 대자보를 중국인 유학생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철거하거나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한 중국대사관이 대자보 훼손행위를 옹호하는 듯한 담화를 내놓자 한국 대학생들이 즉각 비판성명을 내놓았다. 중국대사관은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중국의 청년 학생들이 중국의 주권을 해치고 사실을 왜곡하는 언행에 분노와 반대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며 사리에 맞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학생모임)’은 긴급성명을 내고 “주한 중국대사관의 담화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각 대학에 걸린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현수막을 훼손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면서 이를 “한국의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홍콩 시위를 둘러싼 한중 대학생 간 갈등이 심화할 경우 자칫 외국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인 유학생이 크게 늘면서 내국인 학생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인에 대한 국내 대학생들의 반발심이나 무시하는 태도가 심해질 수 있다”면서 “외국인에 대해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갈등이 깊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희조·손구민기자 l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