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제한을 규정한 법령에 따르면 법정 최고이자율인 연 24%를 초과하는 이자는 무효다. 이 규정을 위반한 행위의 사법상 효과를 부정하는 규정을 ‘효력규정’ 또는 ‘강행법규’라 한다. 반면 국가가 단속 목적으로 일정한 행위를 금지 또는 제한하기 위해 마련한 규정을 ‘단속규정’이라고 부른다. 규정을 위반했을 때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위반 행위의 사법상 효력 자체를 인정하는 경우다.
나름 공을 들여 체결한 계약이 법령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효력이 부정되는 것은 계약 당사자들에게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떠한 법령 규정이 효력규정인지 아니면 단속규정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자제한법과 같이 위반행위를 무효로 한다고 명시하는 경우에는 해결이 간단하지만, 법령에서 효력규정을 명시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부동산 중개보수처럼 당초에는 단속규정에 불과했다고 훗날 대법원이 효력규정으로 명시해 뒤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웅진(옛 웅진홀딩스)가 자회사 태승엘피를 인수합병하기로 결정했다. 태승엘피는 과거 웅진이 회생절차를 밟던 중 관련 소송을 전담하기 위해 신설한 회사다. 웅진은 과거 자회사를 통해 다각적으로 기업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특수목적회사(SPC)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뒤 자회사에 인수합병 자금을 투입하고 SPC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는면 웅진이 SPC의 채무를 인수방식을 활용했다. 금융기관은 모회사인 웅진의 신용을 믿고 그러한 대출을 실행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래구조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집단 내 계열회사 간의 채무보증행위 및 탈법행위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규정에 위반되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만약 이를 위반하는 거래라며 거래 자체는 유효한 것인지가 문제로 부상했다. 대법원은 수년간의 심리 끝에 설령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탈법행위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 금지조항은 단속규정에 불과하다고 판단(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5다227000 판결)해 거래구조가 유효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이 당해 위반행위가 유효임을 전제로 하여 공정위가 재량으로 그 행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과 이를 무효로 하면 금융기관이 담보를 상실하는 피해를 입게 되는 점은 주목했다. 특히 다른 금지대상 행위에 대해 해당 행위를 무효로 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존재하는 점 등을 근거로 유효한 거래로 보았다.
이처럼 특정 규정을 효력규정으로 판단할 때는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해당 위반행위가 사회경제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웅진의 채무인수가 무효화되었다면 관련 금융기관들은 각각 수십억원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입는 것이 불가피해 대법원도 이러한 사정을 중요하게 참작해 판결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