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용률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등 지표는 개선되고 있지만 질 낮은 ‘쓰레기 일자리’가 늘어난 데 불과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유럽에서 1,000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역대 최저실업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파트타임·임시직·자영업 등 사회보장보험 등의 혜택을 기대할 수 없는 질 낮은 일자리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유럽 일자리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14.2%로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4%)보다도 훨씬 높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 유럽 전역에서 실업률이 치솟자 각국 정부가 고용 안정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내놓다 보니 일자리 숫자는 증가했어도 고용의 질은 악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스페인의 비정규직 비율은 26.5%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노동자 4명 중 1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셈이다. 오랜 기간 세계에서 가장 노동자 친화적인 시장으로 꼽혀온 프랑스도 임시직 비율이 2009년 13%에서 2018년 16.2%로 늘었다. 영국 역시 2008년 이후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2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일이 주어지는 계약직부터 자영업 성격이 강한 일자리까지 불안정한 형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럽에서 임시직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정규직에 비해 직업교육이나 승진의 기회가 줄어들고 이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며 수입은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유로존 통계당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빈곤 위기에 처한 노동자 비율은 2007년 7.9%에서 지난해 9.2%로 늘어났다.
수입과 각종 사회보장 혜택이 줄어든 유럽 노동자들이 정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면서 정치지형이 변화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올 4월 스페인 총선에서는 대부분의 사회보장 확대 공약을 내세운 좌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포데모스가 약진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11월 유류세 인상 계획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영국 역시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불만이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를 결정한 국민투표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WSJ는 임시직 근로자가 미국에 비해 유럽에 훨씬 더 많은 이유를 양측 경제의 구조적 차이에서 찾았다. 유럽은 정규직 해고가 쉽도록 제도를 변경했지만 해고 관련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건강보험이 고용과 연계되기 때문에 정규직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유럽은 고용 여부와 관계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구직자들이 굳이 정규직을 찾지 않는다는 차이도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