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200년전 살인사건 판례집 '흠흠신서'…"사법기관 종사자들 꼭 읽어봐야"

다산 정약용의 ‘역주 흠흠신서’ 번역 출간

200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판례집 재해석

고문 두려워 허위 자백하는 경우도 많아

'수사와 재판은 철저하게 흠흠(欽欽)해야'

"현대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과는 멀어"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사진=연합뉴스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매여 있다.…(중략)그런데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 행하면서도 삼가고 두려워할 줄을 몰라 세밀한 부분까지 명확하게 분별하지 못하고서 소홀히 하고 흐리멍덩하게 처리하여 살려야 하는 사람을 죽이기도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 선생은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경우 치밀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 어떤 누구도 억울한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흠흠신서는 다산이 목민관으로 일하며 살인 사건의 조사·심리·처형 과정이 매우 형식적이고 무성의하게 진행되는 것을 개탄하며 계몽할 필요성을 느껴 집필한 형법서다. 다산의 500여권의 저서 가운데서도 ‘경세유표’ ‘목민심서’와 함께 1표(表) 2서(書)라 불릴 만큼 대표적 책이다.


네이버 문화재단과 한국인문고전연구소가 고전 번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역주 흠흠신서’를 출간했다. 책 제목대로 기존의 흠흠신서에 전문가들의 번역, 연구 등 현대화 작업을 거쳐 접근성을 높였다. 당초 ‘경사요의’ ‘비상전초’ ‘의율차례’ 등 30권, 10책으로 된 원문을 3권으로 요약하고 원문서 1권을 더해 총 4권으로 구성했다. 역자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열고 “과거 흠흠신서를 번역한 책이 있지만 일반인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렵게 해석해놨다”며 “이번에 나온 책은 과거 번역서의 오역과 불안정한 요소들을 다 밝혀낸 완역본으로 더이상 손볼 때가 없다. 현대인들이 읽기 편하게 만들어진 책”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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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신서는 청나라의 법률과 판례, 조선시대 현행법·보통법으로 적용된 명나라의 형률서인 대명률을 모두 참고해 만들어졌다. 다산이 목민관으로 일하며 처리했던 수사와 판례, 강진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전해 들은 살인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도 덧붙였다. 일종의 살인사건에 대한 판례집인 셈이다. 박 이사장은 “다산은 수사와 재판이 뇌물이나 권력의 압력, 사사로운 친분 3가지 때문에 공정해지지 않는다고 보고 어떻게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할 것인가를 저술 목표를 정해놓고 쓴 책”이라며 “현재의 검찰개혁도 연관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형사사건을 판결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고대 문헌자료를 수록한 ‘경사요의’에는 중국 송나라 때 살인범으로 몰린 자가 사형에 처할 상황에 놓였다. 당시 관리가 사건에 의문을 품고 죄수를 불러 심문하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잡혀 온 자였다. 관리는 사건을 재조사했고,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 부인이 간통을 저지른 자와 짜고 남편을 살해한 뒤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에 대해 다산은 ‘고문을 두려워해 허위 자백하는 자를 나도 여러 차례 보았다. 백성이 이처럼 어리석으니 잘 살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책의 자문 및 감수를 맡은 송재소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인혁당 사건’ ‘조봉암 사건’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등을 비롯해 오늘날 판결은 200년 전 다산이 생각했던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과는 거리가 멀다. 인명을 좌우하는 판결을 내리는 사람은 하늘과 일체 되어야 하고,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흠흠신서’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라며 사법기관 종사자들에게 꼭 한 번씩 읽어볼 것을 권했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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