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잘 할 수 있는 것만"...젊은 총수들 비핵심 사업 털고 간다

[연말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 예고]

"특화된 경쟁력이 생존 요건"...'문어발식 경영' 한계 인식

한진, 제동레저·한진정보통신 등 적자 계열사 정리 예상

삼성·LG도 비용절감 위해 중복사업 통·폐합 적극 나서

“항공운송과 관련된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릴 것입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비주력 계열사들을 정리하고 주력인 항공 사업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삼성·SK·LG 등 재계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다. 비핵심 사업을 잇따라 정리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서고 있고 비용 절감과 시너지 효과(통합)를 위해 계열사들이 하고 있는 비슷한 사업을 통폐합하고 있다. 경기가 호전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또 ‘재벌식(문어발) 경영’을 펼친 이전 세대와 달리 새롭게 등장한 ‘젊은 총수’들이 ‘잘하는 사업’만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항공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이 선결적으로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진 계열사로 제동레저와 정보기술(IT) 사업인 한진정보통신, 인터넷 통신판매 사업 싸이버스카이, 왕산레저개발 등을 꼽는다. 특히 제동레저와 한진정보통신은 지속적인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항공노선의 비수익 노선 정리와 더불어 화물업의 단편적인 구조조정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지난 9월 선제적으로 1,000억원대의 적자를 낸 화물판매·운송·터미널 중 청주·대구·광주의 운영을 중단했다. 이어 국제 화물도 지난 3·4분기 글로벌 경기부진에 따른 물동량 축소로 수송 실적이 11% 감소된 만큼 비수익 노선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이 비용 절감을 위해 연내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대한항공은 최근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의 여파로 경영환경이 악화하면서 3개월짜리 단기 무급 희망휴직에 나선 바 있다. 대한항공이 지출하는 고정비 중 연료비(25.6%)가 가장 크고 인건비(20.9%)가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내년 경제가 굉장히 안 좋을 것으로 예상해 비용 절감을 구체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도 지난해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수익성이 떨어지는 비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LG유플러스 전자결제사업부를 비롯해 LG전자 하이엔텍·LG히타치솔루션 등 10여건의 매각·철수 작업이 진행됐다. 최근 중국발 저가 액정표시장치(LCD) 경쟁 심화로 업황 부진을 겪어온 LG디스플레이는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해 한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생산직과 5년차 이상 사무직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투자를 통해 차세대 먹거리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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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은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수익성에 제동이 걸린 해외 법인은 과감히 청산하고 있다. 자본잠식에 빠진 베트남 자회사 SS VINA의 경우 구조개선을 위해 철근 라인을 현지 기업에 매각하고 H형강 라인은 일본 기업과 공동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 뛰어든 합성천연가스(SNG·Synthetic Natural Gas) 사업은 셰일가스 증산 여파로 적자가 이어지자 10년 만에 철수를 결정했다.

재계에서는 이런 변화를 위기에 대비한 ‘군살 덜어내기’로 연결지어 해석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되고 불확실성이 커지니 몸집을 줄여 위기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기업들이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불황에 대비하는 것”이라며 “전 세계적인 경기둔화 속에서 경쟁력을 키우려면 선제적 사업 구조조정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그룹 총수들의 세대교체가 이런 변화에 한몫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양한 산업에 진출해 경영 리스크를 줄이는 이른바 ‘문어발식’ 경영에 한계를 느낀 젊은 총수들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사업에 역량을 모으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 경쟁이 과거보다 치열해지면서 특화된 경쟁력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별로 특화된 경쟁력을 가진 기업만 살아남는 구조”라며 “적정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 다양한 산업에 진출하는 문어발 경영으로는 특화한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비주력 사업이던 화학계열사를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매각했고 2017년에는 휴렛팩커드(HP)에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를 팔았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제대로 경영할 수 없는 회사를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은 경영인의 도리가 아니라는 게 이재용 부회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단순한 ‘선택과 집중’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교수는 “아마존·구글의 경우 핵심 사업과 무관한 수십 가지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한 듯 보이지만 실은 공통의 플랫폼을 사용할 수 있는 등 결합되면 생태계 전체를 주도할 수 있는 심층적인 전략을 깔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분야로의 진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동희·박시진·변수연기자 dwise@sedaily.com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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