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싱가포르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지난 2018년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으로 온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센토사섬,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화합하는 동서양 문명의 용광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청렴도 등일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최근 아세안(ASEAN)의 의약품 선도 국가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추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바이오메디컬 산업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2016년에는 헬스케어 및 바이오메디컬 분야를 4대 국가 핵심 분야 중 하나로 선정하는 등 싱가포르 정부가 주도적으로 제약·바이오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아세안은 싱가포르를 포함한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태국·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10개국의 정치·경제적 연합체다. 아세안 국가가 의약품을 수입하는 상대국 중 우리나라는 교역량 10위, 전체 아세안 시장 점유율 3.2%로 규모가 크지 않다. 하지만 아세안은 중국·인도에 이어 인구가 세계 3위, 경제 규모는 세계 5위로 잠재적인 소비력과 시장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곳으로, 우리나라와 함께 경제발전을 이뤄내야 하는 교역파트너이자 투자대상 권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아세안 국가 대상 의약품 수출액은 2014년 3억1,400만달러에서 2018년 4억6,500만달러로 48%나 성장한 바 있다. 이 기간 연평균 수출액 증가율은 10.4%에 달한다.
또 아세안은 국민건강보험이 보편화하고 소비자의 소득수준이 향상하는 등 보건의료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의약품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프리미엄 의약품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2017년 신남방 정책을 발표하며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 강화에 힘쓰고 있는 우리나라가 싱가포르와 의약품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간다면, 우리 제약·바이오 분야가 아세안 제약·바이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2006년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간으로 양국 간 산업·기술, 무역·투자 분야의 협력을 지속 확대해오고 있을 뿐 아니라 2010년 6월 의료제품 분야의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왔다. 일례로 최근 위장약의 주원료인 라니티딘에서 발암물질로 추정되는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돼 논란이 불거졌을 때 우리 보건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싱가포르 보건과학청이 NDMA의 잠정관리기준량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도움을 받은 바 있다.
식약처는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23일 개최된 한·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 보건과학청(Health Sciences Authority)과 양국 간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분야의 협력을 주요 내용으로 MOU를 체결했다. 이번 양해각서의 주요 내용은 △규제정보 교환 △의약품 GMP 분야 지식과 경험 공유 △공동 심포지엄·워크숍 개최 △제조소 및 실태조사 정보 교환 △의약품 품질 부적합 및 제품 회수 관련 정보 공유 등이다. GMP는 의약품이 허가받은 사항과 마련된 품질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제조 및 관리되고 있음을 보증하는 제도다. 이번 MOU는 앞으로 양국 간에 보다 더 다양하고 확대된 상호교류를 추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싱가포르 속담에는 지난해 한·싱가포르 비즈니스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오른손만으로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번 MOU를 통해 우리나라와 싱가포르가 양손을 맞대고 서로 간의 의약품 관리체계에 대한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다지는 동시에 함께 발전할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