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오는 12월 초 현대백화점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동호(63)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 및 현대백화점 대표이사와 박동운(61) 현대백화점 사장이 동반 퇴진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은 이 같은 인사 내용을 지난주 전 직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최근 서울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사를 돌며 직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6년째 현대백화점 대표직을 수행해온 장수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이며 박 사장은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그룹에서 분사한 이래 줄곧 현대백화점에 몸담은 인물이다. 유통가에서 잔뼈가 굵은 두 대표가 물러나는 것은 최근 백화점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소비의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백화점에서는 명품·리빙 등 일부 품목만이 실적을 떠받치고 있다. 올 1·4~3·4분기 현대백화점의 누적 영업이익은 1,8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6%나 급감했다.
60대인 두 대표가 물러나면서 후임에는 ‘젊은 피’가 수혈될 것으로 예측된다. 새 수장은 기존 백화점 사업에 활력을 더하는 동시에 아웃렛·면세점 등 현대백화점의 차세대 먹거리를 이끄는 역할을 부여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2주 뒤 정기 인사가 발표될 예정이라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수적 색채가 짙은 현대백화점이 ‘안정’이 아닌 과감한 ‘변화’를 택한 것은 위기감의 발로로 분석된다. 온라인으로 급변하는 유통환경 속에서 백화점의 실적 부진이 ‘일회성’이 아닌 ‘장기전’으로 돌입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현대백화점은 2020년부터 아웃렛·면세점 등 현대백화점의 신성장동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나섰다.
◇정통 ‘현대맨’ 체제 끝나나=올해로 6년째 현대백화점을 이끌고 있는 이 부회장은 현대백화점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면서 연임 여부에 이목이 쏠렸던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오너 형제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과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의 두터운 신임 아래 이 부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했다. 이 같은 예측을 뒤엎고 현대백화점은 2020년부터 회사를 이끌 대표 자리에 새 인물을 앉힌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84년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그는 기획조정본부 경영기획팀장, 기획조정본부 부본부장 등을 거친 ‘기획통’으로 2012년부터 한섬, 리바트, SK네트웍스 패션 부문 등의 인수 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여러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2014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2017년에는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현대백화점이 시내면세점 입찰에 뛰어들 당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특허권 취득에 일조하기도 했다.
1985년 현대그룹에 입사한 박 사장은 현대백화점 상품본부장으로 활동하다 2017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에는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번 인사에서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세대교체 예고=1950년대생인 두 대표가 모두 퇴진하면서 젊은 수장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보다 젊은 감각의 리더를 앞세워 유통 트렌드를 진두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적어도 1960년대 이후의 인물을 선임하지 않겠느냐”면서 “새 대표의 연령대가 낮아진다면 40대의 젊은 정지선 회장과 함께 합을 맞추기에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것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의 외부 인물 영입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파격 인사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현대의 보수적인 사내 분위기를 고려하면 내부 인사가 승진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장수 CEO까지 교체한 배경…‘뉴 현대’로=이번 인사의 대외적인 명분은 현대백화점의 비전인 ‘비전2020’에 마침표를 찍고 ‘비전2030’을 이끌 새로운 선장을 찾는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6월 대전 프리미엄아울렛, 같은 해 11월 남양주 프리미엄아울렛과 2021년 1월에는 여의도 파크원 개점을 앞두고 있다. 이외에도 식품몰·패션몰 등 온라인 전문몰을 선보이는 등 신규 사업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면세점 사업의 ‘제2막’을 열기 위한 인적쇄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 대표 체제에서 면세점 사업에 발을 디뎠다면 새 대표는 면세점의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추가 점포의 확장 단계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동대문에 위치한 두타면세점에 2호점을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최근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전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이번 교체가 최근 현대백화점의 실적 부진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최근 3년 새 매출이 상승하면서 외형 성장은 이뤄냈지만 영업이익은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대백화점의 올 3·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2% 감소한 777억원을 기록했다. 경쟁사인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같은 기간 두 자릿수 성장하는 데 반해 유일하게 하락세를 기록한 것이다.
◇유통 업계, 12월 인사 칼바람 부나=인사 시즌이 다음달로 가까워지면서 유통 업계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정기 임원인사를 지난달로 앞당겨 진행한 이마트에서는 6년간 대표를 지낸 이갑수 대표가 물러났다. 그의 뒤를 이을 자리에 컨설턴트 출신의 첫 외부 인사가 선임되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음달 인사를 앞둔 롯데그룹에서는 이원준 유통 BU(Business Unit) 부회장 겸 롯데쇼핑 대표이사의 연임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강희태 롯데백화점 사장 또는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이 후임자로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제시된다.
올해로 7년째 신세계백화점 수장을 맡고 있는 장재영 대표는 올해 호실적을 이끌었다는 공을 인정받으면서 연임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3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660억원)을 거뒀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온·오프라인 유통 업체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리더의 경영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면서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외부 인물을 투입한 사례가 나왔듯이 회사가 강화하고자 하는 방향에 전문성을 가진 후임자가 자리에 앉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