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한일 정상회담 조율 하루만에 정면충돌...감정대립 양상

[포스트 지소미아 첩첩산중-먹구름 가득한 후속협상]

징용배상 문제 입장차 여전히 커

日, 사죄 요구 수용 가능성도 희박

아베, 위기 맞서 강경론 불보듯

"수출규제, 실무급 해결 수준 지나

양국 정상 톱다운 합의 바람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오사카=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오사카=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를 외교적 승리로 강조하며 여론전에 나선 데 대해 청와대가 24일 강한 유감을 표출하면서 한일관계의 미래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에 빠지게 됐다. 전날 한일 양국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의 회담에서 다음달 열릴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양국의 정상회담을 조율하기로 했지만, 불과 하루 만에 한일 간 감정싸움으로 지소미아 후속 협상은 난항이 불가피해졌다.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있다./나고야=연합뉴스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회담하고 있다./나고야=연합뉴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갈등의 핵심사안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를 한국 정부가 해결하기 전에는 수출규제를 풀 수 없다는 입장을 사실상 고수하고 있어 양국 협상은 험로가 예상된다. 일본이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자국 여론을 의식한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편 한일갈등 방치가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미국의 압박도 큰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 정치적 부담이 큰 과거사 이슈인 만큼 물러서기 쉽지 않다. 정치적 위기 때마다 한국에 대한 강경론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던 아베 총리가 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서 한국에 양보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최근 국가 공식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유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아베 총리는 이날도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정지 결정을 ‘외교적 승리’라고 강조하며 한국 때리기를 본격화했다.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내년 총선을 앞둔 문 대통령도 국내의 반일 여론을 고려할 때 징용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한 원칙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피해자 측이 한일 정부의 생각과는 달리 배상보다는 일본 측의 사죄에 무게를 두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2515A05 간극큰강제징용배상판결


한일 외교가에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1+1+α(한국 기업+일본 기업+화해치유재단 60억원 및 국민 자발적 성금)’안이 공개되자 피해자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 이날 청와대는 아베 총리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정지 결정이 미국의 압박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만일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주 지극히 실망스럽다”며 “그게 일본 정부의 지도자로서 과연 양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말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이례적으로 아베 총리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현 상태로는 한일 간 징용 피해 배상 문제의 입장 차가 너무 크다. 정상회담은 쌍방의 의견을 확인하는 단계지 봉합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며 “당장 해결하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다. 정부 간 합의를 해도 피해자와 원고단에서 합의안을 거부하고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에 들어가면 의미가 없다”고 내다봤다.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오른쪽부터) 무역안보과장,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지난 7월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왼쪽부터) 무역관리과장,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아 있다./도쿄=연합뉴스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양국 과장급 첫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오른쪽부터) 무역안보과장, 한철희 동북아 통상과장이 지난 7월12일 도쿄 지요다구 경제산업성 별관 1031호실에서 일본 측 대표인 이와마쓰 준(왼쪽부터) 무역관리과장, 이가리 가쓰로 안전보장무역관리과장과 마주 앉아 있다./도쿄=연합뉴스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철회 역시 난관에 봉착할 듯하다. ‘일본이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대해 재검토 의향을 보였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일본은 ‘지소미아와 통상 현안은 별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은 초지일관 강경한 기조를 지키는데 한국만 지소미아 종료까지 갔다가 (조건부 연장으로) 돌아섰다”며 “한국 정부가 다소 난처한 입장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수출관리 정책을 협의하겠다는 국장급 실무 대화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안 교수는 “실무선에서 사태 해결을 바라볼 수준은 이미 지났다. 결국 양국 정상이 먼저 합의를 하는 ‘톱다운’ 방식이 현재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실무협의는 양국 간 정보교환을 통해 상황 악화를 막을 수는 있어도 근본 해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협상 재개 자체가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일본 정부를 ‘수출규제 재검토’라는 명확한 주제를 가진 협상 테이블에 불러 앉힌 것 자체가 협상 진전이라는 설명이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철회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주장한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근거였던) 한국 수출통제의 미비점 등을 우리 정부가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을 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손실은 0.05~0.09%에 그치지만 한국은 최대 0.46%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양국이 상대국을 모두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수출규제에 나섰을 때를 전제한 것이다.
/박우인기자 세종=조양준기자 wipark@sedaily.com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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