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한국 소울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김도향(74)이 내년 데뷔 50주년을 맞이한다. 1970년 듀오 ‘투코리언즈’로 데뷔해 ‘벽오동’ ‘바보처럼 살았군요’ 등 히트곡 외에 수많은 광고음악으로도 대중에게 익숙한 그다. 오는 29일 데뷔 50주년 투어의 서막을 알리는 콘서트 ‘명가의 초대’를 앞둔 그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만났다. 트레이드마크인 흰 수염과 모자 차림의 김도향은 인터뷰에 앞서 돋보기안경부터 꺼내 썼다. “나이를 먹으니 몸도 느려지고, 돋보기도 써야 한다. 천천히 멀리 보는 지혜를 배우라는 하늘의 뜻인 거 같다”며 호탕하게 웃는 그의 함박웃음 속엔 그가 지나온 세월이 아름답게 베어나왔다.
김도향은 지난 7월 음악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앨범 ‘인사이드’를 발매했다. 앨범에 수록된 11곡는 그가 동년배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타이틀곡은 ‘쓸쓸해서 행복하다’다. 그는 “나이를 먹으니 쓸쓸해진다.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것 같다”며 “눈에 보이는 쾌락, 욕망이 허무해지니 도리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더라. 거기서 오는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내가 내껀가’에는 소유의 무상함이, ‘굼벵이’에는 죽음을 새 출발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담겼다. 그는 “실버들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음미하며 남은 삶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며 “함께 흥얼거릴 수 있도록 아주 쉽게 썼다”고 했다.
노년의 즐거움을 나누겠다는 그가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전달력이다. 한창 광고노래를 만들던 시기에는 하루 2~3곡도 만들어내던 그이지만 이번 앨범 타이틀곡은 첫 소절을 정하는 데만 반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저 자신이 노인이라 소재를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적당한 표현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했다. 재즈풍 음악을 시도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서민들이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투덜거리며 부르던 음악이 재즈”라며 “노년의 상황을 읊조리며 어려움을 날리기에 재즈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음악인생 50년을 걸어온 원로가수지만 그가 처음부터 가수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에는 하루 3편씩 꼬박꼬박 영화를 챙겨볼 정도로 영화 마니아였던 김도향은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다.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배고픔’이다. 조연출로 일하던 시절에는 차비가 없어 신촌에서 충무로까지 걸어 다니느라 몸무게가 45㎏까지 빠지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공무원 월급의 두 배만큼 돈을 준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를 보며 외운 팝송으로 카바레 무대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이 그의 음악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어느덧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세고 인생의 4분의 3분이 훌쩍 지났다고 한다. 그는 “70~80세는 티끌거리를 터놓고 환한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라며 “다가오는 50주년도 생각보다 담담하다”고 전했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정신을 잃기 쉽다. 자기 자신을 잡지 못하면 세월 앞에서 의기소침해지고 마지막에도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며 “나에겐 음악이 명상처럼 정신을 잡는 방법이다. 음악 활동을 10년은 더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 내가 글을 쓰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실버들도 자기 자신을 잊지 않고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가오는 50주년 서막 콘서트는 관객 수 100여 명의 작은 규모로 진행된다. 김도향은 “가사의 의미를 설명하려면 요즘 유행하는 ‘싱어롱’ 같은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도 전국에서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작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진=성형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