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 홍콩 구의원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을 거둔 후 홍콩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범민주 진영에서는 지방의회라는 풀뿌리 정치에서 수권능력을 보여주고, 이 기세를 내년 입법회(국회)선거와 2022년 행정장관선거까지 이끌어가기 위해 총력전을 펼 태세다. 반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친중국 진영은 책임소재를 따지며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재야단체인 민간인권전선은 구의원선거 압승의 여세를 몰아 다음달 8일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민간인권전선 측은 “이번 집회는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매체에 따르면 지난 24일 선거 이후 홍콩의 시위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시위대에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한 홍콩 경찰은 ‘온건대응’으로 급선회했다. 시위대도 폭력시위를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다.
민주화 확대를 위해서는 단순한 정치 담론을 넘어서 주민들의 민생 문제 해결 등 새로운 ‘수권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범민주파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 부대표를 지낸 앤서니 청은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지역공동체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SCMP는 야권이 구의원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사임 요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구의회선거에서 가장 많은 91명의 당선자를 내 지방의회 의석 기준 1당으로 올라선 민주당의 우치와이 대표는 “람 장관 사임, 내각개편, 독립적인 조사위 발족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압박했다.
반면 친중국파는 책임론으로 들끓고 있다. 우선 대안 없이 강경책만 내세운 람 행정장관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입법회선거도 어렵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를 계기로 더 이상 중국 지도부의 앵무새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중파 정당 중 하나인 신민당의 레지나 입 대표는 “더는 중국 지도부의 ‘고무도장’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위과정에서 홍콩 기업들의 탐욕을 비난한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도 재계에서 불거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국 관영매체들은 홍콩 시위 사태가 정치 문제가 아닌 집값 폭등 등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비롯됐다면서 홍콩 재벌들을 비난한 바 있다.
지도부의 리더십 약화를 우려한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사태의 책임 자체를 미국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은 전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미국 상하원에서 ‘홍콩 인권민주주의법안(홍콩인권법)’이 통과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정 부부장은 “어떤 국가도 중국 내정에 간섭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