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세안 대화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25일 부산에서 개최했다. 지역협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신남방정책의 협력기반을 공고히 다지는 소중한 자리다. 높은 노동집약 산업 비중과 환경문제 속에서 ‘중진국 함정’ 탈출을 희망하는 아세안 각국은 최근 고부가·첨단산업 육성과 혁신을 강조하며 제조업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온 디지털 경제 부문의 협력에도 높은 관심을 표하고 있다. 혁신, 생산성, 서비스 무역을 키워드로 하는 ‘태국 4.0 (Thailand 4.0)’ 이니셔티브, 전 연령에서 디지털 역량 강화를 진행하는 싱가포르의 ‘스마트 국가 이니셔티브’가 대표적이다.
아세안의 이 같은 변화는 혁신성장을 추진하는 우리나라에 잠재시장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신규 스타트업 창업을 통한 새로운 협력 파트너를 발굴할 기회가 될 것이다. 아세안 지역에 저렴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인터넷 환경이 정비되면서 직면한 문제를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는 ‘디지털 배당’의 시대로 아세안 지역이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동남아 사람 5명 중 4명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동남아 사람의 대부분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한다. 구글과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 수가 지난 2015년 2억6,000만명에서 2019년 3억6,000만명으로 1억명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15~19세 청년층이다. 아세안 지역의 2017년 인구구성에서 5~19세 비중이 50%를 넘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15년이 지난 후에는 15세 이상 인구가 적어도 1억5,000만명 증가할 것임을 쉽게 추산할 수 있다.
한편 아세안 회원국 대부분이 중위소득 국가이지만 대도시 소득 수준은 고소득 국가에 준한다. 말레이시아의 2018년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4,682링깃(약 1만700달러)이지만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는 12만1,292링깃으로 3배가량 차이가 난다. 인도네시아의 1인당 GDP는 5,600만루피아(약 4,000달러)지만 자카르타는 2억4,800만루피아다. 도시의 소득증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시켰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있다. 베트남·싱가포르에서는 ‘그랩’이,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젝’이 차량공유 서비스 사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아세안에서 차량공유 서비스의 이용자 수는 지난 4년간 5배 늘어 올해 4,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페이스북과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지난해 동남아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에서 1인당 평균 125달러를 지출했지만 오는 2025년에는 390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구매자 수가 2015년 4,900만명에서 올해 1억5,000만명으로 증가하고 구매 품목도 다양화되면서 아세안 전자상거래 시장은 지난 4년간 약 7배 증가했다. 구글과 테마섹은 전자상거래·플랫폼 서비스 등 인터넷 경제 규모가 2015년 320억달러에서 2025년 3,0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세안의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역외기업의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아세안의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는 싱가포르의 ‘라자다’와 인도네시아의 토코피디아 지분을 인수해 아세안 전자상거래 사업에 진출했으며 텐센트는 싱가포르 게임회사 SEA의 지분을 인수하고 전자상거래와 금융지급 서비스로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다. 또 인도네시아의 고젝에도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하는 아세안 국가와 통신 및 인터넷 연결을 촉진해 중국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를 형성하려는 ‘디지털 실크로드(DSR)’ 전략으로 이해된다. 아직 아세안 디지털 경제의 규범과 표준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가운데 아세안 역내에서 디지털 생태계를 서둘러 형성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 스타트업의 아세안 진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창출의 장을 첨단 기술개발에 유리한 선진국에 한정하기보다 신흥개도국, 그중에서 신남방 정책의 핵심 협력 대상인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고 스타트업 진출을 통한 아세안 디지털 생태계 조성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의 대도시는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면서 라이프 스타일과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변화하는 혁신 창출의 최적공간이다. 아세안의 변화는 실리콘밸리처럼 완전히 새로운 공급자 중심의 기술개발형 혁신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세안의 디지털 경제는 수요견인형 혁신에 기초한 것이므로 우리가 경험하고 실행했던 것을 아세안의 수요에 충족하도록 개선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우리가 가진 기술을 아세안의 현실에 부합하게 적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접근 방식은 비록 새롭지는 않지만 실패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등은 기술이전이나 하이테크와 관련된 스타트업 육성에 높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 스타트업은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아세안 회원국, 적어도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의 주요 관심 분야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진출 희망 스타트업이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면 아세안 회원국과 협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우리 스타트업의 안정적 진출을 유도할 수 있다. 한편 현지에 이미 진출한 한국계 스타트업의 현지화와 비용절감을 위해 공동 인재채용 창구 및 현지 기존 기업과 한국계 스타트업 간 협의회, 그리고 정기적 비즈니스 매칭 기회 제공 등 한국계 스타트업의 현지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방안을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아세안 스타트업 협력 플랫폼’의 일환으로 고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