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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은 '생존 몸부림'..엽록소 파괴되며 본색 드러내죠

■ 단풍·낙엽에 숨은 과학

겨울앞두고 줄기 사이 '떨켜' 형성

잎에 물 부족해지며 광합성 막혀

안토시아닌 등 색소만 남아 발색

큰 일교차·햇빛 받으면 더 진해져

단풍색소 활용한 건강식품 개발도




가수 송창식씨가 노래한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에는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라는 대목이 나온다. 요즘 전국의 산야에 있던 나무의 잎이 초록색에서 붉거나 노랗거나 주황색(갈색)으로 물들었다가 지고 있다. 바로 단풍(丹楓)이다.

단풍이 드는 것은 늦가을에 나무가 여름의 무성하던 잎을 떨어뜨려 겨울나기를 준비한다는 뜻이다. 혹독한 겨울에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 일부러 낙엽을 만든다. 잎 뒤쪽의 숨구멍으로 수분을 배출하는데 물과 햇빛이 부족한 겨울에 수분을 빼앗겨 말라죽지 않기 위해서다. 곰이나 뱀·개구리처럼 동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낙엽은 나무가 다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름이 된다. 단풍은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 사는 나무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가을 산야의 울긋불긋 화려한 자태 뒤에는 이런 나무의 월동준비와 생존비법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무는 다음해 봄에 또다시 녹색 잎을 만들어낸다

낙엽을 만들기 위해 나무는 줄기와 가지 사이에 단단한 세포층인 ‘떨켜’를 형성한다. 잎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떨켜층이다. 이 떨켜에 막혀 나뭇잎은 뿌리로부터 수분 등을 받지 못하게 되고 역으로 광합성으로 만든 당이나 녹말 등도 뿌리로 보내지 못하게 된다. 유봉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관은 “영양분이 잎에 쌓여 산성도(아브시스산)가 증가하고 물은 부족해지며 나뭇잎에서 광합성을 하던 엽록소(클로로필)가 분해, 파괴되며 상대적으로 분해 속도가 느린 색소가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토시아닌은 붉은색, 카로티노이드는 노란색, 타닌은 갈색, 크산토필은 주홍색을 띠도록 한다.


온 산이 붉게 물드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예찬하지만 실은 단풍은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다. 단풍나무·신나무·화살나무는 붉게, 은행나무·생강나무·아카시아나무는 노랗게, 고로쇠나무·상수리나무·참나무·느티나무는 갈색으로 각각 곱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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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큰 일교차, 햇빛, 적당한 수분이 어우러지면 단풍이 더 진해진다. 단풍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옮겨간다. 위도가 높은 캐나다가 미국에 비해 단풍이 화려하고, 같은 미국에서도 사계절이 뚜렷한 동북부가 서부에 비해 단풍이 울긋불긋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은 단풍이 노란색 위주라 이채롭다. 유럽의 나무에 붉은색을 띠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핀란드 쿠오피오대 연구팀과 이스라엘 과학자들에 따르면 3,500만년 전쯤 동아시아와 북미, 유럽에서 상록수나 열대림이 점차 낙엽수로 바뀌기 시작했고 진딧물 등 해충을 막기 위해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을 만들었다. 이후 여러 차례 빙하기를 거치며 나무가 씨앗을 바람에 날려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유럽에서는 알프스 산맥에 막혀 여의치 못했다. 나무가 얼어 죽으며 기생하던 해충도 사라졌는데 빙하기가 끝나 나무가 알프스 산맥 북쪽으로 다시 올라갈 때 굳이 안토시아닌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게 과학자들의 추정이다. 빙하기에도 두껍게 쌓인 눈 밑에서 살아남은 아주 작은 유럽의 관목이 여전히 붉은색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다.

자연에서는 붉은색이 독성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진딧물이 붉은색 나무보다 노란색 나무를 6배 더 선호한다고 영국 임페리얼대 연구팀이 밝히기도 했다.

단풍 색소인 안토시아닌과 베타카로틴은 식물의 생존은 물론 인간에게 노화와 질병을 예방하는 쪽으로도 쓰인다. 자색 고구마, 포도, 블루베리의 안토시아닌과 노란색 고구마, 호박, 당근의 카로티노이드계 베타카로틴은 항산화물질이다. 정현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원은 “이런 식물의 성질을 활용해 최근에는 환경 변화에도 잘 버티고 항산화물질 등의 기능성 성분을 높인 쌀이나 고구마·감자 품종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이다. 단풍을 보면 나무가 사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고 죽어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인생의 이치도 단풍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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