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청와대 앞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투본) 집회가 한창이던 주말 낮이었다. 집회 인근 효자동의 한 식당에서 근무하는 이모(27)씨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가게 앞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외쳤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청와대 앞 집회에 이씨는 “이제 지쳐서 더 이상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청와대 인근에서 두 달 넘게 진행되면서 이곳 주민들은 주야간 집회로 인한 소음과 교통혼잡에 따른 민원을 잇따라 내고 있다. 지난 27일에는 효자동 주민 117명이 서명한 민원서가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접수됐고, 서울맹학교 학부모들도 학생들의 수업권과 이동권이 방해된다며 단체행동에 나섰다.
지역 상권도 몸살을 앓는 것은 마찬가지다. 종로구 상인들은 주말마다 집회로 소음이 잦은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에 집회와 시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달째 보수단체 회원들로 인한 피해가 직접적으로 다가오자 상인들 사이에서는 “지쳤다” “포기했다”며 하소연이 쏟아졌다. 민주노총도 수시로 집회를 벌이며 대형 스피커 소음 등의 불편을 주지만 보수단체 회원들의 행태는 더 심각하다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더 이상 이들을 손님으로 받지 않는 가게들도 생겼다.
집회로 인해 겪은 ‘에피소드’들이 쏟아졌다.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50대 A씨는 더 이상 보수단체 회원들을 받지 않게 된 것은 “너무 과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2016~2017년 촛불집회 때와는 집회 참가자들이 다른 성격”이라며 “하루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들어와 소주 1~2병을 시키고 고성을 지르니 앉아 있던 다른 손님들은 나가고 새 손님은 안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들 중 가끔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A씨는 술집 앞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나란히 앉아 담배를 태우고 음식을 꺼내 먹자 제지하며 실랑이를 하던 중, 태극기를 든 한 남성이 “대신 사과하겠다”며 회원들에게는 “이러면 우리가 고생을 하며 나온 보람이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효자동 뒷골목에 낮부터 노상방뇨를 하는 집회 참가자들을 다수 목격했다는 점주도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27)씨는 “초반에는 화장실을 사용하겠다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문을 열었지만 너무 잦아져 닫기로 했다”며 “다른 식당들도 그렇게 막고 있다 보니 참가자들이 가게 바로 옆에 볼일을 보고 가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전했다. 또 청와대 분수대 앞길에 있는 카페에서 근무하는 B씨(26)는 “집회 참가자들이 트럭을 타고 확성기를 사용하며 구호를 외치는데, 창문 넘어 가게에 손님이 많은 게 보이면 일부러 보고 들으라고 한동안 트럭을 세워둔다”고 말했다.
종로경찰서에 집회와 관련해 협조를 요청한 서울맹학교의 학부모회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과 보행권을 빼앗는 집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울맹학교는 집회가 자주 열리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500m 떨어져 있다. 사랑채 바로 인근 카페에서 근무하는 B씨(26)는 “주민들은 그럴 수 있어도 상인들은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피해를 공론화할 경우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데 매출에 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