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글로벌 제조업 새판짜기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

일본 최대 조선업체인 이마바리조선이 2위인 패팬마린유나이티드와 합병에 준하는 제휴를 맺었다. 2000년 초반까지 선두를 달린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앞서 중국 정부도 최근 자국 1위와 2위 조선사를 합병시키는 등 조선업종의 합종연횡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새판짜기도 빨라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삼성전자와 파운드리(주문형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대만이다. 대만 반도체 기업 누보톤은 최근 일본 파나소닉의 반도체 관련 사업을 인수하기로 했다. 1월 UMC가 후지쓰의 반도체 공장을 인수하고 2월 산업용 컴퓨터 기업인 어드밴택이 오무론의 자회사를 사들인 데 이어 올 들어 굵직한 것만 세번째다. 중국이 D램이나 낸드플래시 메모리 등의 양산에 나서자 기술력과 인재에서 앞서 있는 일본 업체를 인수해 추격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는 것도 모자라 경쟁업체들의 인재를 대놓고 뽑아가고 있다. 반도체 업체인 칭화유니그룹은 일본 엘피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프랑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미국 보석업체 티파니를 162억달러(약 19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단 하루에 7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인수합병(M&A) 소식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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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제조업체들이 시장 구도를 새로 만들기 위해 무섭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외부와의 경쟁은커녕 내부 환경에만 매달려 역동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 삼성전자만 해도 2017년 미국 전자장비 전문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후 대형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유인책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은 18대 국회부터, ‘데이터 3법’ 등은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주 52시간 근로제와 화학물질관리법 등 각종 법규는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기업들이 정말 ‘버려진 자식’도 모자라 ‘끓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될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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