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골프의 대표 엘리트 김경태(33·신한금융그룹)는 프로대회 통산 20승을 올리는 동안 세 번 울었다. 3년을 우승 없이 보낸 뒤 지난 2010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첫 우승을 거뒀을 때, 2년간 슬럼프를 거쳐 2015년 다시 트로피를 들었을 때 눈물을 보였다. 세 번째는 아예 펑펑 울었다. 지난 1일이었다. 카시오 월드 오픈(우승상금 약 4억3,000만원)에서 20언더파로 2타 차 정상에 오른 뒤 골프 인생 중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3타 뒤져 우승까지는 어려워 보였지만 김경태는 마지막 날 버디만 8개를 몰아쳐 잊혀가던 ‘괴물’ 별명을 끄집어내 각인시켰다. 3년 6개월 만의 우승. JGTO 14승째로 프로 통산 20승을 채웠다. 아마추어 시절이던 2006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4년에 걸쳐 쌓은 20승 금자탑이다.
3일 전화 인터뷰한 김경태는 “제 몸과 상황에 대해 순순히 인정하기 시작하고부터 전에 없던 여유가 생기고 경기가 다시 재밌어졌다. 우승도 그 과정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몸에 이상을 자각한 건 지난해 9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신한동해오픈 최종 라운드였다. 김경태는 등 위쪽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경기 중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피로골절이었다. 원인도 몰라 답답해하던 중 겨우 치료를 받았으나 올 시즌을 앞둔 미국 전지훈련 중 다시 아파 와 바로 짐을 싸 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괜찮아졌지만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퍼트 감각마저 달아났다. 김경태는 “일반적인 입스(yips·불안 증세)와는 다르게 백 스트로크 자체가 안 됐다. 그런 증상이 4월부터 9월까지 계속됐다”고 돌아봤다. 10월까지 7개 대회 연속 컷 탈락이라는 최악의 슬럼프에 빠졌다. 샷에는 문제가 없고 퍼트 감도 이런저런 시도 끝에 되찾았는데 스코어로 연결되지 않으니 답답함이 커졌다.
그러다 중간에 한 대회를 쉬어보기도 하고 멘털 코치(정그린 그린HRD컨설팅그룹 대표)의 도움도 받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바심을 없앴다. 한 달 전쯤부터 기술과 멘털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마침내 보기 없이 8언더파를 치는 폭발력으로 이어졌다. 김경태는 “그동안 제 상태와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망가고 회피하려고만 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그런 것들을 다 인정하고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만 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경기 중에도 위기상황이 닥치면 최악의 결과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우승 뒤 유독 많이 쏟아낸 눈물은 시련을 극복해냈다는 감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4년을 함께한 48세 베테랑 캐디랑 포옹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어요. ‘지난해부터 제가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이 사람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돈을 많이 못 벌었을 테니까. 그래도 내색 없이 곁을 지켜준 고마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고요.”
2017년에 둘째 아이를 얻은 뒤로 처음 우승한 거라며 웃은 김경태는 “이제 겨우 부진을 끊어냈으니 큰 욕심은 없다. 기복을 줄이고 매년 1승 이상씩은 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544위였던 세계랭킹을 250위까지 끌어올린 그는 “세계랭킹에는 여전히 욕심이 있다. 더 끌어올려서 미국 메이저대회에 다시 나가는 꿈은 버릴 수가 없다”며 “100위권에 진입하면 아마 그때부터는 매주 랭킹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라며 또 웃었다. 2011년 찍었던 18위가 김경태의 최고 랭킹이다.
JGTO 상금랭킹 41위에서 단숨에 12위로 뛰어올라 시즌 최종전 JT컵에 초대받은 김경태는 5일 도쿄 요미우리CC(파70)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2언더파 68타를 적었다. 30명 중 공동 8위로 선두와는 3타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