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韓 경제, 반세기만 최악 우려”…‘집도의’가 안보인다

이철균 시그널부장

3년 연속 2% 안팎 성장은 사상 처음

큰 위기 없는데…日평균 수출액 20억 달러 깨져

“좋아진다” “나름 선방”…誤診에 희망고문만

위기는 만성·구조화…정확한 진단·수술해야

이철균 부장이철균 부장



“한국 경제가 반(半)세기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진단이다. 해외 매체의 평가에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다만 곳곳에서 한국 경제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은 냉철하게 봐야 한다. “곧 좋아질 것”이라거나 “나름 선방하고 있다”는 아전인수식 해석은 곤란하다. 불안을 키우면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고는 하지만 오진(誤診)은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1997년 환란이 꼭 그랬다.

FT는 한국 경제가 2년 연속 2%대 성장을 하는 것에 주목했다. 경제의 ‘복원력’이 사라지는 것을 본 것이다.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 경제는 성장률 추락 뒤 이듬해에는 바로 회복했다. 해외에 으쓱댈 정도였다. 지금은 그런 회복력이 없다. 4·4분기에 0.9% 이상 분기성장률이 나오지 않는 한 올해 2% 성장은 물 건너갔다. 국내외 모든 기관은 내년 역시 2% 안팎으로 본다. 사상 유례없는 3년 연속이다.


성장률 2%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 성장률 2%를 밑돈 것은 세 차례에 불과하다. 2차 석유파동이 있던 1980년(-1.7%)을 비롯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5%),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0.8%)이다. 나라 안팎의 큰 충격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2.7%)에 이어 올해·내년까지 2% 안팎의 성장에 그친다는 것은 상황을 180도 달리 봐야 한다. 한국 경제가 이제는 구조적인 저성장의 덫에 빠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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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발표대로 물론 긍정적인 지표도 있다. 10월 경상수지는 78억3,000만달러로 10개월 만에 최대다. 고용률과 실업률·취업자수 등 3대 지표가 좋아지면서 고용은 외형상으로 보면 나쁘진 않다.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7개국 가운데 한국은 미국(2.4%) 다음으로 성장률이 높다.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미국·독일·일본 등 9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게 다일까. 다른 경제지표를 보자.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하는 수출은 12개월째 마이너스다. 12월부터는 플러스로 돌아설 수도 있지만 이것은 수치상의 착시다. 일평균 수출액에서 20억달러선이 무너졌다. 고용도 양은 늘어 다행이지만 40대와 제조업 일자리는 줄곧 빠지고 있다. 취업이 안 돼 쉬고 있다는 인구는 217만명으로 역대 최대다. 일자리를 만들, 산업기반도 무너지고 있다. 반도체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첨단기술은 중국에도 한참 뒤진다. 생산·소비·투자가 동시에 줄었다는 것을 뜻하는 ‘트리플 감소’는 잊을 만하면 뉴스에 등장한다. 경상흑자 폭이 커졌다고 하지만 이는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면서 얻어진 ‘불황형 흑자’의 측면이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의 붉은 깃발을 뽑겠다고 했지만 모빌리티부터 의료정보 등 신산업에 대한 규제는 여전하다. 타다 금지법은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대기업의 한 최고경영자(CEO)가 “왜 한국에 투자해야 하는지, 이유를 대보라”고 할 정도로 투자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3·4분기까지 외국인 직접투자(신고 기준)는 29.8%가 줄어든 반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28%(상반기)가 늘었다. 특히 제조업은 74억3,000만달러를 해외에 투자하면서 55.7%나 급증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43명의 국내 경제석학이 엮은 ‘2020 한국경제 대전망’의 키워드는 오리무중과 고군분투다. 위기의 그늘이 더 짙어진다는 것인데 고군분투도 유능한 집도의를 앞세워 해야 한다. 하지만 이념의 틀 속에서 경제를 바라봐서는 날카로운 집도의는 찾을 수 없다. 그저 기업의 현장만을 찾아 공허한 팔뚝질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기를 바란다.
/fusioncj@sedaily.com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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