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동대문구 담대한 실험 ‘재활용학습터’···현실 벽 못넘고 1년반 만에 철수

재활용 시민의식 높이기 위해 지난해 5월 작심 도입

“15만 포인트 적립”...일부 시민들 ‘소일거리’, 전락

‘횟수제한’, ‘가격조절’ 묘책에도 올해 말 철수 예정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제방길에 나란히 설치된 ‘네프론’/허진 기자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제방길에 나란히 설치된 ‘네프론’/허진 기자



어스름이 내려 앉은 지난 4일 오전 6시 30분 동대문구 장안평제방길, 새벽운동을 나선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재활용 페트병과 캔을 한아름 들고 온 노인 여럿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줄의 맨 앞에는 자판기를 닮은 낯선 기계 두 대가 나란히 자리했다. 돈을 넣으면 상품을 내어주는 여느 자판기와 달리 이 자판기는 반대로 물건을 주면 돈을 돌려준다. 이름은 ‘네프론’, 지난해 5월부터 동대문구와 스타트업 ‘수퍼빈(SuperBin)’이 합작해 전농동구내 두 곳에 총 4대가 설치됐다.

시민들은 등록된 번호를 이 기계에 입력한 뒤 캔이나 페트병을 넣는다. 기계는 페트병과 캔이 들어오자마자 압축시키고 개당 5원~7원을 해당 계정에 적립해준다. 가까운 자판기에 재활용 폐기물을 넣고 곧바로 환전 받는 경험을 통해 시민들의 재활용 의식을 고양하고 또 미래 세대들의 재활용 경험을 위해 동대문구는 수퍼빈과 손잡고 네프론을 도입했다.

‘수퍼빈(SuperBin)’의 한 관계자가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벚꽃제방길에 설치된 ‘네프론’을 열어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허진 기자‘수퍼빈(SuperBin)’의 한 관계자가 지난 3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벚꽃제방길에 설치된 ‘네프론’을 열어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하고 있다./허진 기자


독특한 디자인과 간편한 작동방식에 네프론은 설치되자마자 동대문구민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초중등학생들도 자연스럽게 들고다니던 재활용 폐기물을 포인트로 환전 받았다. 구태여 먼 거리를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많았다. 지난 2일 네프론을 정기점검하다 만난 수퍼빈 관계자는 “동대문구 수퍼빈들은 초기부터 반응이 남다른 편”이었다며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다양한 층에서 사용하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네프론의 기계 한대당 이용량은 월 평균 300명 후반대에서 많게는 400명 초반까지 이른다. 재활용 처리되는 양도 월 평균 3t에 육박한다. 이는 매달 약 50만원 가량의 현금으로 시민들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설치 1년 가량을 지나며 “재활용 효용감 제고”라는 당초 목적이 점차 퇴색됐다.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헤비유저’들이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애초 다양한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재활용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시설로 시작됐지만 일부 노인들의 용돈벌이 공간이 변질돼버린 것이다. 네프론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새벽 7시 네프론 앞에는 일반 가정집에서 나오기 어려운 양의 재활용 폐기물을 들고 줄을 선 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많게 하루 수백명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기계는 줄선 몇 사람에 의해 2시간도 안돼 먹통이 된다. 폐기물을 갖고 왔다 먹통이 된 기계에 다시 돌아가야만 했던 최모(45) 씨는 “어제도 헛걸음해서 오늘은 더 빨리 왔는데도 요즘 통 이용하기가 어렵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시민들이 지난 4일 새벽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벚꽃제방길에 설치된 ‘네프론’에 재활용 폐기물을 넣고 포인트를 환전받고 있다./허진 기자시민들이 지난 4일 새벽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벚꽃제방길에 설치된 ‘네프론’에 재활용 폐기물을 넣고 포인트를 환전받고 있다./허진 기자


지난 4일 열리는 시간을 맞춰 네프론 앞에 기다리던 박모(78) 씨의 로그인 화면에는 15만원이 조금 넘는 포인트가 적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프론이 도입될 때부터 이용해왔다는 박씨는 이 일을 ‘소일거리’라고 말했다. 나란히 놓인 바로 옆 네프론에서도 성인 허리까지 오는 자루에 한가득 재활용 폐기물을 들고 온 안모(71) 씨가 부지런히 수거품을 넣고 있었다. 이 많은 양을 어떻게 모았냐는 물음에 안씨는 “저 옆에 뚝방길에 있는 포장마차나 주변 모텔, 식당에 놓인 것을 모아왔다”며 “환경정화도 되고 좋지 않냐”고 되물었다. 동대문구청의 한 관계자는 “재활용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은 훌륭한 정책”이라면서도 “동대문구 일부가 워낙 낙후지역이다보니 의도대로 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네프론’ 옆에 쌓여 있는 페트병들./허진 기자‘네프론’ 옆에 쌓여 있는 페트병들./허진 기자


쏟아지는 민원에 수퍼빈은 동대문구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했다. 헤비유저들의 독점을 해소하고 다시 여러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네프론을 목표로 해결책을 모색했다. 먼저 수퍼빈은 무제한이었던 투입가능 개수를 차츰 줄여 하루 50개로 제한했다. 기존 페트병·캔 개당 각 10, 15원씩 주던 것도 각 7, 5원으로 하향조정했다. 회수를 하루 한 차례에서 두 차례로 늘렸으며 일부 기계에는 직원이 상시 대기하며 수시로 기계를 비우고 헤비유저들을 상대로 홍보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효과를 봤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진 못했다. 사람들은 개수 제한에 가족 번호를 동원으로 대응했고 다른 지역 기계를 이용하기까지 했다. 결국 끊이지 않는 민원 탓에 구청은 내년 예산안에서 네프론 운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동대문구와 네프론의 인연이 채 한달이 남지 않았지만 수퍼빈은 마지막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동대문구에 한해 수퍼빈은 지난 4일부터 직원을 파견해 헤비유저들의 폐기물은 따로 회수해 환전해주고 있다. 그들의 영향을 배제해 일반 시민들의 반응만 놓고 평가해보겠다는 것이다. 동대문구에선 철수하게 됐지만 수퍼빈은 이곳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타지역 운용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수퍼빈 관계자는 “결국 중단하게 됐지만 많은 시민들이 이용했던 곳”이라며 “이곳의 경험을 토대로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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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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