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2020년도 예산을 확정했다. 정부안보다 1조2,000억원 삭감한 512조3,000억원 규모로 올해 예산보다 9.1% 늘어난 숫자다. 내년 예산의 특징은 국내총생산(GDP)의 3.5%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다. 유럽연합(EU)의 가입조건인 3% 적자관리 허용 한도를 넘는 수준의 큰 규모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 성장이 족보에 있는 경제정책이라고 한 적이 있지만, 경기침체 때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기본인 케인스 이론에 따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경기 부양을 위해 한국에 확대재정을 시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재정확대에 소극적인 독일을 겨냥해 한국의 정책을 따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역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부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경기회복을 위한 적자재정은 거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한시적’이어야 한다.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낼 때 돈을 벌어서 갚는 걸 전제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국이 적자재정을 폈던 때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잠깐이었다. 평소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비 올 때를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한국이 위기를 빨리 극복했던 것도 재정이 튼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한 한시적인 적자로 그치지 않고 복지 강화를 위해 지속적인 재정 팽창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뿐 아니라 그 후 3년 동안도 계속 재정적자가 3% 이상 발생하게 된다.
OECD 국가 중에서 계속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내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GDP의 10%가 넘는 재정적자를 보다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4~5%대로 줄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 다시 6~7% 수준으로 확대됐다. 미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적자재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고 있고, 미국 국채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에서도 적자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채무 상한 설정과 같은 법률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도 계속 GDP의 3%가 넘는 재정적자를 경험했다. 이는 정책적인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사하는 바처럼 정책 실패와 이에 대한 대응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 적자가 쌓이면 이를 보전하기 위해 세율을 올리고 그 결과 경기가 더 나빠져 세수가 더 축소되는 식이다. 여기에 고령화로 연금 부채가 커지고 디플레이션까지 겹쳐 일본은 현재 국가부채가 GDP의 200%를 넘는 빚더미 국가가 됐다.
국가가 복지 등의 필요에 따라 지출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세금을 더 걷어 시행해야 한다. 그냥 국가채무를 늘리는 것은 세대 간 부담을 떠넘겨 그러지 않아도 좌절감을 겪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정부는 적자재정이 고착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는 경기 부양을 권고하는 국제기구에서도 강조하는 점이다. 공무원 정원 증대처럼 항구적인 재정지출 확대가 수반되는 조치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24조원 규모 23개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조치는 경제성이 부족한 사업에 투자해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므로 적용을 신중히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 제도도 개혁해 채무 발생 요인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나라 곳간의 작물은 썩히려고 쌓는 게 아니라 어려울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평소 아껴 써서 비축해야 정말 어려울 때 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