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대표하는 소설가 조갑상의 단편집 ‘테하차피의 달’에 수록된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는 1930년대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선인 오모니 살인사건을 소재로 쓴 글이다. 주 배경으로 철도 관사와 남선창고(南鮮倉庫)가 등장한다. 특히 남선창고는 주인공 ‘나’에게 애틋한 장소다. 사랑한 남자 승덕이 일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연인은 ‘명태 고방’으로도 불렸던 그곳을 둥지 삼아 영원한 사랑을 꿈꿨다. 그러다 추억의 장소가 헐린다는 소식에 ‘나’는 이렇게 읊조린다. “누군들 멈춰두고 싶은 시간과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겠는가” 이 질문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작가가 작품을 발표한 때가 2009년 10월. 창고가 철거된 것이 그해 4월이었으니 불과 반년 전 일이다. 그래서 고향의 대표적 근대 건축물이 헐리자 작정하고 쓴 소설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소설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비참한 삶과 함께 사라져가는 장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다.
소설에서 그려졌듯이 남선창고는 당시 전국 최대 명태 보관창고였다. 1900년 3월 부산 지역상인들이 함경도 특산물인 명태 등 해산물을 배로 실어와 보관해두기 위해 초량동에 지었다. 그때는 냉동고가 없는 시대여서 바닥에 수로를 만들어 물기를 제거한 뒤 서늘하게 유지하는 방식을 썼다. 초기에는 명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부산 토박이치고 남선창고 명태 눈알 안 빼먹은 사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차츰 화공약품·합판·신발 등으로 보관 품목이 늘었고 이들은 경부선 기차에 실려 서울 등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이름은 처음에 회흥사(會興社)로 불리다가 얼마 후 북선창고(北鮮倉庫)로 바뀌었다. 경원선 개통으로 원산에 북선창고가 생기면서 1926년 남선창고로 다시 변경됐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100여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2009년 사라지고 말았다. 철거 당시 문화재로 지정해 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무산되고 마트가 들어섰다. 지금은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이 흔적을 가늠하게 한다.
부산 동구가 남선창고 부지에서 시작해 초량동 이바구길을 따라 명란(명태알)을 주제로 한 관광콘텐츠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관광 활성화 공모에 선정된 사업이다. 내년 하반기까지 스토리가 있는 명품 관광상품을 만들 계획이라고 하니 벌써 기대된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