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국 관광객, 국제면허 있어도 베트남선 운전 못해요"

베트남 정부에 확인도 없이

정부 자의적으로 "통용" 결론

관광객 현지서 적발 잇따라

말 뿐인 신남방정책에 불만

경기 남양주경찰서에 ‘국내 발행 국제운전면허가 베트남에서 통용되지 못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허진기자경기 남양주경찰서에 ‘국내 발행 국제운전면허가 베트남에서 통용되지 못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허진기자



일산 동구에 사는 대학생 A(23)씨는 내년 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달 살기를 계획 중이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유를 갖고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맘껏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한 달을 체류하며 주변 도시들까지 여유롭게 여행하려는 A씨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렌터카를 예약하려다 국내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를 현지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크게 낙담했다.

정부가 ‘신남방정책’을 펼치며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지만 최근 베트남에서 국내에서 발급된 국제운전면허증의 사용이 금지돼 관광객과 단기 체류 국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12일 경찰청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국내 운전면허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증으로는 지난달부터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운전을 할 수 없다. 이에 일선 경찰서와 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급히 안내문을 부착하고 공지에 나섰다.

베트남방문관광객


한국인국제운전면허증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베트남 정부로부터 한국의 국제운전면허를 받아들이겠다는 확답을 받지 않았음에도 통용이 된다고 정부가 결론 내린 탓이다. 정부는 매년 상대국에 국제운전면허가 통용되는지 확인하는 조사에 나선다. 베트남은 2017년까지 국제운전면허가 통용될 수 있다고 확인해줬지만 지난해는 별다른 회신이 없었다. 정부는 이를 재차 확인하지 않은 채 올해도 통용된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조사를 하다 보면 회신이 안 오는 국가도 있어 2회 연속 응답이 오지 않으면 불인정으로 보지만 통상적으로 한 차례 확인이 오지 않는 경우는 연장하는 게 관례”라고 해명했다.


그 사이 베트남 현지에서는 국내에서 발급받은 국제운전면허로 운전을 한 한국인들이 잇따라 현지 경찰에 단속됐다. 처음에는 베트남어가 유창하지 않은데다 으레 있는 부당 단속이라고 생각해 단속에 걸린 이들도 국제운전면허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단속 적발이 잇따르며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으로 민원이 쇄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베트남 측에 공문을 보내 입장을 물었다. 이에 베트남 측은 “베트남은 제네바협약에 가입한 바 없고 (비엔나협약 비가입국인) 한국의 국제운전면허를 인정한 적도 없다”고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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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그간 베트남이 양대 국제교통협약인 제네바·비엔나협약에 동시 가입돼있다고 간주했지만 제네바협약의 경우 통일 이전의 남베트남(월남) 당시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현재 제네바협약에만 가입돼있어 해외에서 국제운전면허로 운전을 하려면 원칙적으로 해당국이 제네바협약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반면 한국 정부의 경우 제네바협약뿐 아니라 비엔나협약 가입국에도 상호주의 원칙에서 기회를 열어놓아 베트남 국민들은 자국 국제운전면허로 한국에서 운전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베트남 교통부를 통해 제네바협약 가입 여부에 대한 공식입장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국제운전면허 사용 길이 막히면서 베트남 현지에서 운전을 해야 하는 한국 관광객들은 우회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베트남을 방문한 국내 여행객 수는 지난 2015년 115만명에서 2018년 349만명으로 3배 이상 느는 등 최근 급증해 현지 자유관광객들의 불편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운전하려면 베트남 관청을 통해 한국 운전면허증을 베트남 면허증으로 교환하거나 직접 운전면허증을 따야만 한다. 어떤 경우든 비용과 시간이 드는 절차가 필요해 관광객과 체류자들의 불편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행객 피해가 우려돼 급히 관련 공지를 내려보냈다”면서도 “현재 베트남 정부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만큼 답변 여부에 따라 문제가 해결될 여지도 열려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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