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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성과관리, 블랙박스처럼

■ 황서종 인사혁신처장




‘블랙박스’는 내용물을 잘 알 수 없는 상자라는 뜻으로, 검은색이 암시하듯 불투명한 밀실이라는 부정적 비유로 흔히 쓰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항공기나 자동차의 블랙박스는 사건의 진실을 보여주는 기록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특히 항공기는 사고 이후 남아 있는 증거자료가 거의 없어 사고 직전 비행기록과 조종실 안 대화가 담긴 블랙박스가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결정적 단서가 된다.

최근 여러 글로벌 기업들이 평가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구글은 평가등급을 41개에서 5개로 축소하고 동료평가(peer review)를 등급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어도비는 관리자가 분기별 1회 이상 직원에게 상세한 피드백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도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연말평가 대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상시적 소통채널을 운영한다. 평가제도 운영방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시도의 공통된 목적은 항공기의 블랙박스처럼 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더 나아가 성과관리를 직원의 ‘성장’ 과정으로, 관리자를 평가자보다는 ‘성장의 조력자’로 재정립하는 데 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 없이 평가제도를 바꿨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등급제를 폐지한 어떤 기업들은 직원에게 공개하지 않는 비공식 등급인 ‘그림자 등급’에 의존해 급여인상 대상을 정하거나 본인 성적을 궁금해하는 직원들의 요구로 다시 등급제로 돌아가기도 했다. 어느 조직이든 뛰어난 직원을 우대하고 부진한 직원을 독려하려면 성과와 역량에 대한 판단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공식평가가 없는 조직에서 구성원의 공감대와 관리자의 역량, 그리고 정교한 인사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평가는 암묵적으로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편향된 판단이 개입되고 각종 보상이 원칙 없이 결정된다면 그야말로 부정적 의미의 ‘블랙박스’에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공직사회는 공무원의 직종과 업무가 워낙 다양하고 법령에 근거한 인사제도 간 정합성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도입하거나 평가제도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것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여건에서도 정부는 각 부처의 자율성을 살리면서도 성과관리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예를 들어 공정한 평가와 소통 강화를 위해 주기적 성과 면담과 다면평가를 활성화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 아닌 부서 단위로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협력이 필수적이며 계량화하기 쉬운 업무에 절대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해 동료 간 협업을 장려하고 있다. 아울러 인사혁신처는 앞으로 직원 개개인의 성장을 돕는 존재로서의 관리자 역량을 키우고, 성과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블랙박스라는 이름과 달리 항공기 블랙박스는 형광을 입힌 주황색이다. 사고의 핵심단서인 만큼 어디서든 눈에 띄게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인재를 파악하고자 할 때 성과정보를 찾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어떨까. 사고 당시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항공기의 주황색 블랙박스처럼 성과관리가 공무원 인사에서 ‘진실의 상자’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박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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