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2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니소’의 전 세계 40개국 최고경영자(CEO)가 모였다. 멕시코는 2016년 미니소가 진출한 지 3년 만에 약 4,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급성장한 국가다. 전 세계 4,000여개 미니소 매장 중 매출 톱10에 이름을 올린 매장 3곳이 멕시코에 있다. 미니소의 창업자 예궈푸 회장은 이날 열린 CEO 정례회의에 양창훈(60·사진) 비즈니스인사이트 회장을 초청했다. 멕시코와 같은 해 진출했지만 계속된 부진으로 사업을 접을 위기에 처한 미니소코리아의 ‘소방수’로 양 회장을 낙점했기 때문. 양 회장도 앞서 중국 광둥성의 미니소 본사를 방문한 뒤 제품 경쟁력에서 미니소코리아의 회생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만 그는 동시에 미니소의 글로벌 유통망을 주목했다. “2박 3일간 멕시코의 주요 미니소 매장과 물류센터를 돌아보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중남미와 동남아 미니소 매장에 우수한 한국 제품을 선보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양 회장은 예 회장에게 한국 상품에 대한 소싱 및 수출권에 대한 확답을 받고 돌아와 10월 미니소의 마스터프랜차이즈 기업인 미니소코리아를 인수합병했다. 유통 인생 제2막을 쓰기 시작한 양 회장을 최근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났다.
◇현대百에서 35년 유통 외길 첫발…대기업 대표까지=그가 유통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4년 현대그룹에 입사한 뒤 현대백화점그룹 기획실로 이동하면서부터다. 양 회장은 “육군 병참 장교로 근무하며 유통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며 “기왕이면 이미 자리가 잡힌 선두 유통기업보다는 갓 유통사업을 시작하는 현대에서 함께 성장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입사 당시 현대그룹은 재계 1위였지만 변변한 유통사업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현대백화점에 무역센터점과 목동점·신촌점 오픈 등 대규모의 백화점 사업을 기획했으며 금강산 관광 개발로 대북 사업에도 관여하며 회사의 성장을 함께했다.
현대백화점에서 전략기획실장과 유통연구소장까지 거친 그는 2005년 현대아이파크몰 영업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초기 아이파크몰은 아무리 유통 전문가라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적자가 4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상인회의 불신이 팽배해 있었고 상인회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소통이 되지 않았다. 양 대표는 “상인회를 찾아가면 문전 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며 “2박 3일 연수를 갖고 설득을 이어가 3개월 만에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존 유통업체의 조직과 매장·인프라를 따라가기에는 이미 많이 뒤처진 상황이었다. 이에 양 회장은 아이파크몰에 ‘몰링’ 개념을 집어넣기로 했다. ‘즐길 거리’와 ‘살 거리’를 믹스앤매치하는 매장의 재구성을 통해 당시 ‘몰링’ 개념이 생소하던 국내에 몰링을 현실화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양 회장이 아이파크몰 대표에 오른 지 3년 만에 적자기업은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양 회장은 제2의 도약기를 위해 2015년 말 신라호텔과 함께 HDC신라면세점을 오픈했다. 당시 치열했던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대전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며 특허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017년에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증축에 돌입했다. 증축의 효과로 올해 초 아이파크몰의 영업이익률은 20%대에서 30%대로 뛰어오르며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됐다.
◇벤처서 연 인생 ‘제2막’…중소기업 판로 확대 집중=양 회장은 지난해 9월 돌연 아이파크몰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35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고 어느 정도 임무를 완수했기에 이제는 쉴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때 현대백화점 전략기획실 출신 후배들이 불쑥 들이닥쳤다. 성준경 비즈니스인사이트 대표와 자회사인 리테일인사이트의 수장 김인호 대표였다. 양 회장은 “현대백화점 전략기획실에서 함께 일하던 시절에 지나가는 말로 언젠가 다시 한 번 뭉치자고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후배들이 찾아왔다”며 “기약 없을 줄 알았던 25년 전 약속이 현실이 됐다”며 웃어 보였다.
후배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그는 대기업 대표직을 내려놓은 지 6개월 만인 4월 비즈니스인사이트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 창립된 비즈니스인사이트는 유통·식품·소비재·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회사다. 용산에서 테헤란로로, 대기업에서 벤처로 환경이 변한 만큼 그의 목표도 달라졌다. 그동안 대기업 유통을 중심으로 일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경제 활성화의 근간인 중소기업들을 뒷받침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대기업에서 쌓은 유통 노하우로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며 상생의 형태로 사업을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
최근 미니소 인수에서도 그가 중점을 둔 부분은 중소기업들의 해외 판로 개척이었다. 중국에 본사를 둔 미니소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80개국에서 4,0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매출액 180억위안(약 3조88억원)을 기록했으며, 2022년까지 100여개 국가에서 1만여개 매장을 운영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양 회장은 “미니소 본사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국내 우수 중소기업 상품이 수출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며 예 회장을 직접 만나 한국 상품의 글로벌 소싱권을 미니소코리아 인수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말했다. 미니소코리아는 이를 위해 최근 동아쏘시오홀딩스·L&P코스메틱스 등 한국 기업과 협약을 맺고 제품 공동 개발·수출에 착수했다. 박카스는 이르면 내년 초 미니소 글로벌 유통망에 공급될 예정이다.
미니소 이외에 식품 플랫폼 서비스인 ‘프레시맨’도 중소상공인과 뗄 수 없는 사업이다. 프레시맨은 미국의 인스타카트와 유사한 서비스 모델로 지역 슈퍼마켓을 기반으로 한 신선식품 배송 플랫폼이다. 현재 지역 슈퍼마켓 170개를 회원사로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 말까지 2,000개 마트를 회원사로 모집 운영할 계획이다. 양 회장은 “지역 공동 물류 활용 등 물류 효율화를 지원해 슈퍼마켓 기반의 공유 경제 플랫폼을 구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中으로 시장 확대…‘K의료’에서 새 먹거리 찾는다=양 회장은 오랜 유통 경험을 토대로 비즈니스인사이트의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의료·바이오 시장에 진출해 한국 의료 기술과 플랫폼을 이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는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전환 중인 중국에서 의료 사업은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중산층 확대와 정부 정책에 힘입어 매년 20%씩 성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인들의 방한 의료관광이 매년 약 8% 증가하는 등 한국 의료기술과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 지금이 진출 적기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비즈니스인사이트는 지난해 중국 최고의 중앙정부 의료정책기관인 ‘동방지고’와 중국 의료 사업을 위한 합자회사를 설립했다. 동방지고와의 첫 합작 사업은 2021년 3월 상하이에 문을 여는 여성전문병원이다. 산과와 부인과는 물론 여성 피부과와 소아 아동과까지 8개 과가 들어가며 산후조리원과 연구센터·상업센터 등도 갖췄다. 그동안 한국의 산후조리원은 중국에 진출한 사례가 있지만 여성전문병원이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탄생한 중국의 신생아 수는 1,523만명으로 한국 33만명 대비 약 46배나 많지만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양 회장은 “최근 중국에서 유행이 결혼할 때 시아버지가 산후조리원 등록권을 끊어주는 것”이라며 “여성의 경제적 영향력과 소득 수준이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은 조리원 이용률이 약 75%에 달하지만 중국은 1선 도시 기준으로 5~8% 수준에 그친다.
비즈니스인사이트는 상하이를 시작으로 중국 전역 8개 지역에 순차적으로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특히 이곳에 한국의 우수 의료기기와 용품·제약을 공급해 병원 사업 확장을 위한 수익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비즈니스인사이트는 이를 위해 최근 국내 최고의 여성전문병원인 분당차병원과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분당차병원은 상하이 여성전문병원에 의사와 간호사 등 전문의료 인력에 대한 의료기술을 지원하고 암·난임 등 선진치료 환자의 진료 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양 회장은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을 위해 더 많은 전문 병원들과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중국 내 2~3선 도시 등 중국 전역에 여성전문병원을 진출시키고 향후 동남아 등 다른 나라에도 한국 의료 기술과 시스템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e is…
△1959년 서울 △1977년 서울 동북고 △1982년 중앙대 경제학과 △1984년 현대그룹 입사 △1997년 현대백화점그룹 전략기획실장 △1999년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유통연구소 소장 △2002~2006년 올가홀푸드 대표이사 △2005년 현대아이파크몰 영업본부장 △2010~2018년 현대아이파크몰 대표이사 △2015~2019년 HDC신라면세점 대표이사 △2015년~ 한국민자역사협회 회장 △2019년~ 비즈니스인사이트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