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블랙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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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16일, 이라크 바그다드 번화가에서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 살인극이 벌어졌다. 무장 요원이 총을 난사하면서 어린아이와 여성 등 17명이 순식간에 피를 흘리며 널브러졌다. ‘니수르 광장의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의 중심에는 미국의 대표적 민간 군사기업(PMC)인 ‘블랙워터’가 있었다. 인근 금융가에서 터진 폭탄테러를 피해 미 외교관을 안전지대로 옮기던 중 차량이 밀리자 이런 참극을 저지른 것이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들끓자 블랙워터는 회사명을 ‘지(Xe) 서비스’로 바꿨고 2011년 ‘아카데미’로 다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블랙워터는 미국 해군특전단(네이비실) 출신인 에릭 프린스 등이 1997년 만들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요원 경호사업으로 시작해 2001년 9·11테러 이후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2003년 이라크전 발발과 함께 숫자를 늘리고 20여대의 항공기까지 확보했다. 이라크에서만 200여건의 총격 사건을 일으킬 만큼 악명이 높다. 미국은 첨단무기로 바꾼 뒤 치안유지 등에 필요한 병사가 부족하자 블랙워터를 기용하고 사살 행위도 묵인했다. 미국의 독립기자 제러미 스카힐이 쓴 ‘블랙워터’라는 책을 보면 블랙워터가 언제든 소집 가능한 전직 특수부대 요원과 군인이 2만1,000여명이고 용병만 2,300여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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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인 프린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비밀 채널 역할을 하며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미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전략 자문을 맡았고, 누나인 벳시 디보스는 교육장관에 올랐다. 2017년에는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막후 통로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미국이 한국과 방위비 협상에서 블랙워터 등 PMC의 용역비까지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프린스가 이번에는 정쟁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베네수엘라에서 미 정부를 대신해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베네수엘라 내분이 일자 대규모 용병 계획을 세운 데 이어 최근에는 수도 카라카스를 찾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측 인사인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과 은밀하게 만났다고 한다. 미 언론에서는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통한 마두로 정권 전복이 제대로 되지 않자 트럼프가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닌지 주목하고 있다. 세계 패권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미 정부와 그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민간 군사기업의 수장, 그 커넥션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김영기 논설위원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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