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초동 야단법석] 정경심 재판은 왜 '전대미문'의 法-檢 전쟁터가 됐나

檢 정경심 기습 기소에... 재판부, 공소장 불허

전직판사·시민단체·언론·법원까지 장외전 가세

집단반발로 전략 튼 검찰... 법정서 고성 오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 누적된 불신 분출

'한 사건-두 재판' 현실화... 재판부 변경 변수

△A검사: 재판장님! 검사는 공소제기와 책임 권한이 있고...

△재판장: 제가 몇 번 얘기했어요? 앉아요.


△방청객들: 앉아!

△A검사: 기재가 안 돼 있어...

△재판장: 앉으세요!

<중략>

△B검사: 편파적으로 진행한 부분 정식으로 이의제기합니다!

△재판장: 검사님 이름이 뭡니까?

△B검사: B검사입니다.

연극·영화 대본이 아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에서 벌어진 재판장과 검사 간 실제 대화다.

법조계에서 법정은 신성한 공간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이곳에서 되도록 상호 존중하는 게 관례다. 특히 재판 진행을 관장하는 재판장은 사건의 결론을 좌우지 한다는 점에서 검찰이나 변호인 누구도 그와 맞서려 하지 않는다. 자칫 심기를 잘못 건드렸다가 원치 않는 판결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은 법정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다.

이날 오전 열린 재판 양상은 그래서 더 이례적이었다. 통제에 따르지 않고 일어서서 발언하는 검사와 이에 거듭 경고를 주는 재판장 간 신경전이 20여 분간 날카롭게 이어졌다.

이 재판은 다름 아닌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의 공판준비 절차였다. 동양대 표창장 위조 관련 네 번째 공판준비기일과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 관련 첫 공판준비기일이 연달아 열렸지만 재판 시간의 상당 부분이 재판장과 검찰의 말다툼으로 채워졌다. 판사와 검사는 정 교수 재판에서 왜 이렇게 크게 부딪친 걸까.

정경심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정경심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정경심 공소장 불허’에서 시작된 사법부-검찰 갈등=정 교수 재판을 둘러싼 재판부와 검찰 간 갈등은 지난 10일 정 교수의 동양대 표창장 의혹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송인권 부장판사)가 검찰 측이 낸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재판부는 “공범과 범행일시·장소·방법·동기 등이 모두 중대하게 바뀐 이상 동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기존 공소장은 검찰이 조 전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던 지난 9월6일 저녁 정 교수를 조사 없이 기습적으로 기소하면서 제출됐다. 검찰은 당시만 해도 표창장 위조 시점을 2012년 9월7일쯤으로 보고 사문서 위조 공소시효(7년)가 임박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후속 수사로 파악된 위조 날짜는 2013년 6월이었고 결국 그 기존 공소장이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종전 공소장과 변경된 공소장에 적힌 죄명은 같지만 동양대 표창장 위조 공범은 성명불상자에서 정 교수 딸 조모씨로 바뀌었다. 범행일시도 지난 2012년 9월7일께에서 2013년 6월로 변경됐고 장소 역시 동양대에서 정 교수 주거지로 바뀌었다.

범행 방법은 컴퓨터 파일로 상장을 출력해 직인을 임의로 날인했다고 기재했다가 변경 후에는 딸 상장을 스캔한 뒤 이미지 프로그램을 사용해 워드 문서에 삽입하고 직인 부분만 오리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썼다. 범행 동기는 ‘국내외 유명 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쓰기 위해서’였다가 ‘서울대 의전원 서류 제출과 관련해서’로 특정됐다.

정 교수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제2부(고형곤 부장검사) 검사들은 “기본 사실 관계는 같은 공소장”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정 교수의 공범들을 수사 중이었던 만큼 기존 기소 사건과 추가 기소 사건이 병합될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추가 증거들을 기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새 공소장에는) 기소 이후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재판부의 태도는 완고했다. 재판부는 크게 화를 내며 “공소장 변경 불허는 이미 재판부가 판단했고 (검찰은) 지시를 따라야 한다”며 “계속 (그런 주장을) 하면 퇴정을 요청할 것”이라고까지 경고했다. 재판부가 발언하는 중 검사들이 끼어들 때마다 “가만히 앉아 계시라”는 꾸짖음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입시비리·사모펀드 의혹 관련)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가를 계속 늦출 경우 정 교수의 보석(보증금 등을 내건 석방)도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기존 공소장대로라면 사실관계가 맞지 않아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는 무죄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검찰은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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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배(왼쪽)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종배(왼쪽)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서 정경심 교수 사건과 관련,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불허한 서울중앙지법 송인권 부장판사를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외전으로 번진 정경심 재판 논란=정 교수 재판부와 검찰 간 갈등은 곧 법원 밖으로까지 번졌다. 일각에선 송 부장판사가 본격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 교수에 대한 무죄 심증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아울러 그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11일 전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공개 비판은 그 절정이었다. 이 교수는 “(바꾼 공소장에서) 공모자와 위조 목적을 전보다 구체적으로 특정한 것은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유리하다”며 “송 부장판사는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려고 작심하고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건 재배당 전) 다른 재판장이 정 교수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정 교수의 편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되는 송 부장판사에게 인위적으로 사건이 재배당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송 부장판사가 과거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옥중 서신’을 작성·유포한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이력과 최근 진행 중인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을 예로 들며 그가 정치 편향적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 대표는 심지어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에 송 부장판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자 참다 못한 법원도 대응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공보판사는 13일 “(정 교수의 1심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의 요건인 ‘공소사실의 동일성’에 관해 법리적인 검토를 거쳐 결정을 내렸을 뿐”이라며 “일부 언론 등에 게재된 바와 같이 재판장이 해당 사건의 결론을 미리 정해놓았다거나 이념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은 판사 개인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자 재판의 독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기자단에 반박 의견을 보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4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시민들이 방청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4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시민들이 방청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집단 반발로 전략 바꾼 검찰=외부 지원 사격 덕분일까. 검찰은 19일 이전 기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처럼 검사들은 작심한 듯 돌아가면서 재판부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날 재판부는 재판 진행 절차 등에 문제가 많다는 검찰 측 의견서를 두고 “의견서를 계기로 재판부 중립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것”이라며 일부 수긍하는 모습도 보였다. 소란은 재판부가 검찰에 관련 진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불거졌다.

재판부가 갑자기 화제를 바꿔 “검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다. 검찰이 주로 문제 삼은 것은 공소장 변경 불허 문제와 공판 조서 기재 문제였다. 검찰에 따르면 재판부는 지난 10일 검찰의 수차례 이의제기와 재판장의 퇴정 경고, 보석 청구 언급 등을 공판 조서에 기재하지 않았다. 대신 “(공소장 변경 불허에 대해 검찰이) 별다른 의견이 없다고 진술”이라고 썼다.

“진술 기회를 달라”는 검찰과 “자리에 가만히 앉으라”는 재판부 간 실랑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검찰이 “내용도 안 듣고 기각했다고 조서에 기록을 남기라”며 들이받자 재판부는 “이러면 재판 진행 못한다”며 호통을 쳤다. 정 교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목록 등이 증거 자료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검찰은 “공소제기 후 압수수색을 진행한 사실이 전혀 없어 불필요한 오해”라고 일축했다.

검찰의 화살은 정 교수 측 변호인단으로도 향했다. 검찰은 지난 기일 때만 해도 입시비리·사모펀드 혐의와 관련해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협조하겠다”던 입장이었지만 이날은 “재판부가 보석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자 추후 이를 활용하려고 일부러 지체한다”며 책임을 변호인단 쪽으로 돌렸다. 정 교수 측이 “수사기록 열람 등은 검찰과의 상호 협력 문제”라고 항변하자 검찰은 “비난하라고 의견 진술 기회를 얻었느냐”고 화를 냈다. 정 교수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는 “30년간 재판을 해 봤지만 오늘 같은 재판 진행은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누적된 불신 터져=법조계 일각에선 사법부와 검찰의 이번 갈등이 조 전 장관을 둘러싼 정치적 견해 차이보다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이후 누적됐던 상호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판사들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법원은 대형 스캔들을 만드는 검찰 방식에 의심을 키웠고, 검찰은 재판부에 정면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는 진단이다.

법정에서 재판만 하던 법관들은 지난해 피의자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의 권력형 사건 수사 방식을 난생 처음 체감했다. 당시 조사를 받은 판사 대다수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검찰 입맛대로 기재되는 진술 조서에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검찰이 특정 목적에 따라 유죄 심증을 가진 채 증거를 수집하고 진술 조서까지 작성한다는 강한 의심이 이들의 경험을 통해 법원 전반에 퍼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5월 열린 자신의 첫 재판에서 “온 진술 조서가 추측성 진술로 뒤덮여 있고 증거는 있지도 않다”며 “이런 수사가 허용된다면 이것은 우리 국민들한테는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고 검찰권에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와 공소제기에 대한 불신은 사법행정권 남용 이후 최대 권력형 사건인 조국 사태를 맞아 결국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무리하게 먼저 제출된 공소장, 재판부 재량으로 작성된 공판 조서 등 정 교수 재판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검찰의 관행과 맞닿아 있다.

반면 검찰은 고위직을 포함한 법원 전체 조직조차 언제든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을 했다. 사법부의 권위가 크게 내려가면서 판사의 판단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법정 안에서 검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드러내놓고 고성을 지른 정 교수 재판은 사법부를 대하는 검찰의 태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판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100명이 넘는 판사가 검찰 조사를 받은 뒤로 검찰의 막무가내식 수사방식과 진술조서 증거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는 법관들이 엄청나게 늘었다”며 “정 교수 재판부가 정치적 고려를 한다기보다는 검찰의 수사 및 공소 절차를 꼼꼼히 따지려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귀띔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정권은 계속 바뀌어도 법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며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지켜보면서 판사들을 늘 상대해야 하는 검사들이 언젠가는 반격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한 사건-두 재판’으로 복잡해진 유무죄 셈법=검찰은 공소장 변경 불허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 17일 동양대 표창상 위조 혐의를 다시 한 번 기소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에 19일 사문서 위조 재기소 사건을 기존 정 교수 재판부인 형사합의25부에 배당했다. 법원 관계자는 “검찰의 병합 신청을 고려해 관련 예규에 따라 배당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한 재판부가 사실상 동일한 사건을 두고 두 개의 공소장으로 두 개의 재판을 진행하게 되면서 정 교수에 대한 사법판단도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대체로 사실관계가 어긋나게 된 기존 사건은 무죄로 마무리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재기소된 사건의 경우 기존 사건 기소 뒤 강제수사로 수집한 증거의 효력을 재판부가 인정해 줄지 여부가 관건이 됐다. 만약 1심에서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경우 항소심에서 1심의 잘못을 다퉈보겠다는 게 검찰의 의도다.

내년 2월 있을 법원 정기 인사는 정 교수 재판의 또 다른 변수다. 아직 정식 재판이 아닌 공판준비기일만 진행되는 상황에서 다음 주부터 내년 1월 초까지 2주간 이어지는 법원 휴정기간을 고려할 때 정기 인사 전 선고 공판이 열릴 공산은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정기 인사로 현 재판부가 이동하게 되면 정 교수 재판은 내년 3월부터 사실상 완전히 다시 시작된다.

서울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사실 공소장 변경을 허가해 줄 것으로 예상한 법조인이 더 많기는 했다”며 “검찰이 정 교수 재판이 실시간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점을 간파하고 전략적으로 재판부와 각을 세우는 모습을 연출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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