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못·철판도 못 만들던 시절…조선강국은 임파서블 드림이었죠”

한국해사기술·청주석회, 명문장수기업 선정

각각 국내 첫 민간조선사·56년 광업 외길 기업

신동식 회장 “30년 지나 강국들 제친 조선강국”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 인증 수여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 인증 수여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명문장수기업 인증 수여식장. 백발의 ‘한 노인’은 이날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된 자신이 세운 회사, 한국해사기술의 발자취 영상을 말없이 지켜봤다. 한국해사기술에 인증서를 주기 위해 참석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조선 분야에서 전설적인 분이며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바로 ‘조선의 아버지’라고 소개받는 신동식(89) 한국해사기술 회장이다.

한국해사기술은 1969년 국내 첫 민간 조선기술전문기업이다. 심해탐사선, 원유 운반선 등 지금껏 2,000여종의 선박을 만들었고 국내외에서 25개 초대형 조선소 건설에 참여했다. 우리나라 최초 쇄빙선인 아라온호도 이 회사가 제작했다. 신 회장은 6.25 동란 때 바다를 채운 수송선, 군함을 보고 ‘이렇게 큰 배가 있구나’ 놀랐다. 그는 ‘국가 힘과 기술의 상징이다’ ‘언젠가 우리 힘으로 설계를 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1950년대 서울대를 졸업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신 회장은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철판 하나, 못 하나 만들지 못했다”며 “저에게 세계 제일 조선국가로 만들자고 했을 때 ‘임파서블 드림’( Impossible Dream·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를 다잡은 것은 국가에 대한 걱정이었다. 신 회장은 “당시 우리나라는 가발을 팔고, 일본에 횟감과 김을 수출하거나 광업이 전부였다”며 “조선이 ‘기관차’가 돼서 제철산업을 일으키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국가의 중장기 계획의 설계를 도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과학기술원 설립자로도 유명하다.

관련기사



신 회장의 꿈이 이뤄질 때까지 30년이 걸렸다. 신 회장은 “30년이 지난 후 우리는 영국, 독일, 스웨덴을 제치고 전세계 조선산업 시장점유율 60%를 달성했다”며 “제철산업이 성장했고 조선산업에만 세계 일류제품이 생산하는 600개 국내 기업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는 운이 좋았고 국민도 좋아서 한국은 세계 제일의 조선강국이 됐다”고 겸손해했다. 현재 한국해사기술은 신 회장의 아들인 신홍섭 대표가 2세 경영을 맡았다. 신 대표는 “잠시 아버지를 도우려고 왔는데 10년이 지나도 내가 채울 공간이 많다”며 “다양한 분야의 선박을 미리 준비해 우리 회사가 실기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해사기술과 함께 명문장수기업이 된 청주석회의 최종문 대표는 4대째 가업을 물려받은 40대 경영가다. 청주석회는 1963년 설립된 광업기업으로 현재는 다양한 기초소재도 공급한다. 최 대표는 “4대째 가업을 잇는 사명감보다 ‘제가 여기서 대를 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더 크다”며 “앞으로 기업을 더 키우고 더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두 기업이 포함되면서 명문장수기업은 14곳이 됐다. 명문장수기업은 45년 이상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에 주어진다. 박 장관은 “명문장수기업을 통해 기업가 정신, 창업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명문장수기업에 대한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종곤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