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청론직설] "고율 상속세 대신 기업승계 지원…법인세수·고용 확대 유도해야"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중소→중견, 중견→대기업 '성장 사다리' 전혀 작동 못해

중견기업 범위 세분화로 기업 규모 따라 맞춤형 정책 필요

세계 최고 수준 65% 상속세율, 명문 장수기업 탄생 막아

유럽선 '기업 자산=공공재' 인식 아래 기업승계 적극 지원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올해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500억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가 몰리는 영역도 기존 제조업에서 금융·보험·부동산으로 넓어지고 있다. 반면 국내 제조설비나 건설 투자, 외국인 직접투자 등은 줄어들면서 산업 공동화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국내 생산기지를 없애거나 줄이는 대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추세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제, 고율의 상속세 등 기업 경영을 옥죄는 각종 규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수년째 4,000곳 안팎에 머무르며 양적·질적 성장이 지체되고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중견기업 창업 세대의 급격한 고령화 역시 당면 과제다. 창업 50년을 넘긴 기업(1,629곳, 2018년 8월 말 기준) 가운데 오너 겸 최고경영자(CEO)의 나이가 70세 이상인 기업이 18%, 60세 이상인 경우는 49%나 된다. 하지만 고율의 상속세 탓에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경영권 승계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 승계에 실패하면 해당 기업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술과 영업 등 무형의 자산도 함께 사라진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기술 혁신과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보다 사업 확장성이 높은) 중견기업을 키워야 하는데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이해나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며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일자리 정부’를 실현하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가꿔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최대 65%로 세계 최고 수준인 상속세율에 대해서는 “고율의 상속세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져 법인세 등 세수를 늘리고 사회보장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쪽으로 정책의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체가 줄고 있다는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또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 간 규모 이동이 활발하지 못하다. 지난 2015년부터 3년간 매출액 3,000억~5,000억원 미만 구간의 중견기업은 39개 늘어나는 데 그쳤고 5,000억~1조원 미만 구간은 18개, 매출액 1조~자산규모 10조원 미만은 21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성장 사다리가 활발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온갖 규제로 성장을 방해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중견기업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 즉 매출액 1,500억원에서 자산 10조원 미만 구간에 들어간 기업들은 모두 중견기업이다. 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견기업 정책을 세분화하고 구간별로 연구개발(R&D)·금융·인력 등을 맞춤형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매출액 1,500억~3,000억원 미만, 3,000억~5,000억원 미만, 5,000억~1조원 미만, 1조~자산 10조원 미만 등으로 나눠 규모별로 접근하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데.

△신입사원 임금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이 일본은 물론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데다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시행되면서 생산 기지로서 한국의 메리트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 공장으로의 이전이 가속화한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이 중견기업인데 이마저도 어렵게 되고 있다.

-중견기업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정부가 중견기업 지원 정책을 하나 만들면 중소기업계의 반응이 싸늘하다. 중소기업은 당연히 정부가 도와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있지만 중견기업은 스스로 성장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견기업계 입장에서는 이러한 허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중견기업 한 곳에 딸려 있는 중소기업이 400~500개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온다. 중견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중소기업으로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산업별로 놓인 글로벌 환경을 고려하면 오히려 규모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와 경쟁하는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얼마나 덩치가 큰지, 그리고 기술 개발을 위해 얼마나 공격적으로 투자하는지 등을 고려하면 단순히 중견기업이니까 스스로 성장하라는 주문은 무책임하다. 이를 위해서는 스케일업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에 통과된 세법개정안을 평가하면.


△내년부터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는 중견·중소기업의 업종·자산·고용 유지 의무기간이 10년에서 7년으로 줄고 요건도 완화됐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고용 유지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자 인원’ 또는 ‘총급여액’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하지만 따져 보면 가업상속공제는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을 상속할 때 20년 이상 경영하면 상속세를 최대 500억원 깎아주는 제도다. 즉 중소기업과 초기 중견기업에만 혜택을 주기 때문에 규모가 큰 중견기업에는 남의 나라 일이다. 결국 고용 창출 여력이 높고 법인세 등 기여도가 큰 중견기업들이 원활하게 승계할 수 있는 통로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래서 매출액 기준을 3,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리고 공제 한도를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기본적인 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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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바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가업상속공제를 해주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기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져 투자도 확대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명문 장수기업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게 아닌가. 규모의 경제를 이루려면 중견기업에서 명문 장수기업이 많이 나와줘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일이나 프랑스·벨기에 등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일반 상속은 높지만 기업 상속은 세율을 낮춰 적용한다. 생산활동에 기여하는 기업의 자산은 일자리 등 공공의 부를 창출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통해 기업이 50년·100년씩 생존하면서 분담하는 사회보험 등 제반 사회보장부담금이 많기 때문에 ‘기업 자산은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기업의 사업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감면하는 것은 기업의 존속을 보장하고 일자리 보존이라는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이 27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일자리를 늘리려면 적극적인 중견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튼실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호재기자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상속세 명목세율은 50%로 일본 55%에 이어 2위지만 최대주주 할증(30%)을 포함하면 65%(중소기업은 57.5%)로 사실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17년 9월 상속세 폐지와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파격적인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아베 신조 정권은 지난해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촉진하는 세금 우대 방안을 추진했다. 포르투갈과 슬로바키아는 2004년, 스웨덴은 2005년, 노르웨이와 체코는 2014년 상속세를 아예 폐지했다. 독일의 경우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지만 기업을 상속하거나 증여의 방식으로 승계하는 경우에는 30%의 최고세율을 적용한다. 특히 상속인이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의 50%를 투입해도 상속세를 개인적으로 납부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 금액을 넘는 나머지 상속세액에 대한 납부를 면제해준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상속세 유지보다 상속세 폐지로 얻는 국가적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상속세를 줄여주는 대신 법인세 등 세수를 늘리는 게 합리적이라는 지적인데.

△이는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최근 김용민 연세대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상속세와 증여세가 전체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반면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를 합하면 전체 국세의 75.9%를 차지한다. 전체 국세의 2.6%에 불과한 세수에 집착하다가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더 큰 세수를 놓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상속세 문제는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나 세수가 아닌 국가 전체의 경쟁력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알짜 기업이 해외로 넘어가는 것도 큰 문제 아닌가.

△최근 들어 외국의 투자유치 전문 컨설턴트들이 자주 찾아온다. 특히 상속세가 없는 싱가포르의 경우 싱가포르투자청 소속의 투자업체가 자국 조세 제도의 장점을 홍보하면서 오너들을 만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예컨대 국내 중견기업 A사가 싱가포르에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투자하면 싱가포르 투자업체들도 함께 투자하는 방식인데 A사는 투자한 만큼 지분을 가져가 지분 승계에도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당연히 상속세 부담 없이 자녀에게 해외 법인을 상속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한국 자산의 해외 유출 문제가 뒤따르게 되는데 고율의 상속세로 고민이 많은 기업들로서는 이런 선택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최근 중견기업계 2세의 움직임도 활발한데.

△중견기업연합회 산하에 영CEO네트워크가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부모 세대는 국내에서 사업을 하면서 여건이 되면 해외로 진출했지만 30~40대 초반의 2세들은 글로벌 마인드가 돼 있기 때문에 해외 진출에 관심이 많다. 해외 파트너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것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2세가 상당수다. 이들을 좋은 기업가로 성장시키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4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1977년 건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학 석사와 건국대 법학과 석사를 마친 후 독일로 건너가 1995년 쾰른대 법학 박사(경제공법)를 취득했다. 1977년부터 2008년까지 기업은행에서 전략기획팀장과 경제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2010년부터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5년 한국가족기업연구원장을 맡아 기업승계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올 2월 중소기업연구원장으로 취임했으며 한국중견기업학회 고문도 맡고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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