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자 그대로 내우외환의 한 해를 보낸 한국 경제, 새해 전망 역시 밝은 편이 아니다. 집권 전반기 실험적 정책으로 인한 후유증을 수습하는 일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고, 미중 무역전쟁이나 한일갈등의 경제적 파장 역시 연내 완전히 진정되리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성장률 둔화가 예상되는 선진국 경제와 달리 한국 경제는 기저효과와 확대재정에 힘입어 단기적으로는 완만한 회복세가 점쳐지지만 본격적인 호전 요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국 경제가 추세적 하향의 길을 걷고 있음은 지표상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실질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대내외 리스크에 대한 유연한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경제성장률 하락과 디플레이션 압력을 재정확장과 금리 인하로 대응하는 방식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효과가 반감할 뿐 아니라 부작용마저 초래할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응체제를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한국 경제의 앞날에 대한 위기감으로부터 출발할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말하면 정책당국자는 위기도 아닌데 위기감을 조성한다고 발끈할 수 있고, 이미 세계 10위권에 든 한국 경제가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위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발발한 시점보다는 그 이전 상황에서 위기감을 가지고 적절하게 대처해 전쟁의 재앙을 방지할 수 있듯, 한국 경제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처해야 하는 ‘좋은 위기(good crisis)’를 맞을 수 있다. 추세적 하락이 이어지는 현시점에서도 위기감을 가지고 대응해야만 국가적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위기’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위기의식이다.
‘좋은 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 그동안 ‘소득주도 성장’의 간판에 가려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혁신성장이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정책의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새해에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와 4대 혁신성장 분야에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배정하고 20조원 이상 연구개발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혁신성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읽기에 손색이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땜질처방은 물론 나열식 산업정책의 차원을 뛰어넘어, 비전을 분명히 하고 구체적 계획과 피드백을 통해 한국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혁신성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기조를 혁신성장으로 분명히 전환하고 그동안의 정책들을 이 기준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정치적 미련은 과감히 버리고 공정경제도 혁신성장의 구성요소로 포용해 집중과 체계의 정책을 펼쳐나가야만 한국 경제의 추세적 하락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분배적 포퓰리즘은 생산적 복지로, 지배구조 개입을 통한 공정규제를 혁신 추동적 공정경쟁으로 바꾸는 등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노동 존중’은 노조 간부 중심에서 근로자 일반으로 그 초점을 이동시켜 노동시장이 경직되지 않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제 숨 고르기가 시작된 최저임금은 충격을 지속적으로 흡수해나가고, 근로시간·임금·기능의 유연화와 더불어 비정규직의 획일적 정규직화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결단을 기대한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주체들의 대응능력이다. 위기에는 유연한 대응능력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에는 창의력이 관건이다. 유연성과 창의력의 순위를 매기자면 기업, 정부, 정권 순이다. 일반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 구도가 너무나 극명하다. 따라서 이제 정권은 뒤로 물러서고 주눅 들었던 정부가 혁신의 여건 조성에 헌신하고, 안절부절못하던 기업이 창의력을 발휘해 혁신에 매진할 때 비로소 새해는 ‘좋은 위기’의 해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해야만 정부도 존재감을 회복하고 정권은 임기 후반을 유의미하게 운용할 수 있으리라.
반드시 전쟁영웅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좋은 위기’의 올해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위기감을 가지고, 혁신성장 중심으로 정책을 재정비하고, 혁신에 힘을 모아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