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를 개탄하며 산길을 걷다가 ‘금수회의장’이라는 현판이 걸린 곳에 발길을 멈춘다. 알림판이 붙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하고, 회의 내용도 자유롭게 방청하라.’
1908년 낙엽처럼 쇠락해가는 사회를 통탄하며 안국선이 지은 신소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의 앞부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개구리가 연단에서 연설한다. “사람들은 좁은 소견을 가지고 외국 형편도 모르고 천하대세도 살피지 못하고 공연히 떠들어댄다. 나라는 망해가건마는 썩은 생각으로 갑갑한 말만 하는구나.”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2.4%로 잡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재발하지 않고 반도체 등 수출여건이 개선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2%로 예상했고 민간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과 LG경제연구원은 각각 1.9%, 1.8%로 전망했다. 정부와는 시각차가 크다. 청와대와 정부는 2019년 성장률을 2.6~2.7%로 예상했지만 지난해 성장률은 2.0% 달성도 힘든 상태다. 호기로운 것은 좋지만 경제 현실 진단을 잘못해 정책이 겉돌고 국민들에게 희망고문을 줄 수 있다. 도그마에 빠진 탈원전도 매한가지다. 신재생에너지 비중확대라는 방향성은 맞지만 토끼몰이하듯 과속질주를 하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2017년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냈지만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1조원 이상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해외는 딴판이다.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가동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로 방침을 전면 수정했고, 미국은 원전 수명을 80년으로 연장했다. 개구리의 지적처럼 천하대세를 잘 살펴야 한다.
이번에는 벌이 단상에 올랐다. “말(言)은 꿀같이 달게 하면서 배에는 칼을 품고 있는 ‘구밀복검(口蜜腹劍)’에 대해 말하겠다. 사람의 입은 변화가 무쌍하다. 맞대했을 때에는 꿀을 들이붓는 것같이 달게 말하다가 돌아서면 흉을 본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 관련 장관들은 겉으로는 기업의 고충을 들어주겠다고 말하지만 발길은 거대권력이 돼버린 민주노총과 노조로 향하고 있다. 치열한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EU·중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들도 앞다퉈 법인세 인하, 규제혁파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1달러의 국부(國富)라도 창출하기 위해 기업인들의 야성적 충동을 일깨우며 백방으로 뛰고 있는데 우리는 ‘기업은 악(惡), 노조는 선(善)’이라는 왜곡된 체면에 빠져 있다. 홍 부총리가 올해는 노동·공공 등 4대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다음은 게 차례다. “나는 창자가 없는 무장공자(無腸公子)올시다. 시방 세상 사람 중에 옳은 창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신문에서 그렇게 나무라고 사회에서 그렇게 시비하고 백성이 그렇게 원망하고 있는데도 모른 체하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진실 가리기는 뒷전인 채 맹목적인 사수에 나서고 있다. 조국 사태로 온 나라가 38선보다 선명하게 두 동강이 났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며 법원 판결을 기다리면 될 터인데 조국 아바타 역할을 해댄다. 더듬이 잃은 메뚜기 신세로 전락한 자유한국당은 여태 정신을 못 차린다. 제1야당을 밀어내고 범여권을 포섭해 공수처 법안을 밀어붙인 것은 수(數)의 정치를 하겠다는 오만과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4년 차에 들어선다. 올해는 대한민국이 가라앉느냐, 일어서느냐를 가름하는 분기점이다. 개구리와 벌·게 등 금수회의록에 참석했던 동물들이 더 이상 금수회의를 열지 않기 바란다면 국민들의 욕심일까. vicsjm@sedaily.com